VIII. 정의(Justice)와 도덕(Morality)

우리는 법을 사회 통제의 수단으로서 특징짓는 요소들을 해명하기 위해, 명령(order), 위협(threat), 복종(obedience), 습관들(habits), 일반성(generality)이라는 관념들만으로는 구성할 수 없는 요소들을 도입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법에 특징적인 것들 가운데 너무 많은 것이, 그것을 이러한 단순한 용어들로 설명하려는 노력에 의해 왜곡된다. 따라서 우리는 일반적 습관(general habit)이라는 관념과 사회적 규칙(social rule)이라는 관념을 구별하고, 규칙들이 행위의 지침적이고 비판적인 기준들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드러나는 규칙들의 내부 측면(internal aspect)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이어서 우리는 규칙들 가운데, 의무의 일차 규칙들(primary rules of obligation)과 승인·변경·재판의 이차 규칙들(secondary rules of recognition, change, and adjudication)을 구별하였다. 이 책의 중심 주제는, 법의 독특한 작동들 가운데 매우 많은 것과 법적 사고의 틀을 구성하는 관념들 가운데 매우 많은 것이, 그 해명을 위해 이 두 유형의 규칙 가운데 하나 또는 양자에 대한 참조를 요구하므로, 이 둘의 결합은, ‘법(law)’이라는 단어가 올바르게 사용되는 모든 곳에서 그것들이 언제나 함께 발견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법의 ‘본질(essence)’로 정당하게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차 규칙들과 이차 규칙들의 결합에 이러한 중심적 자리를 부여하는 우리의 정당화는, 그 결합이 거기서 사전의 일을 해낼 것이라는 데 있지 않고, 그것이 큰 설명력을 가진다는 데 있다.

이제 우리는 법의 ‘본질’(essence), ‘성격’(nature), 또는 ‘정의’(definition)에 대한 오래된 논의 속에서, 우리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단순 명령 이론(simple imperative theory)에 가장 자주 맞세워져 온 주장(claim)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법과 도덕 사이에는 어떤 의미에서 ‘필연적(necessary)’인 연결이 존재하며, 법 관념(notion of law)을 분석하거나 해명하려는 어떤 시도에서도 중심적인 것으로 취급될 자격이 있는 것은 바로 이 연결이라는 일반적 논지(contention)이다. 이러한 견해의 옹호자들은 단순 명령 이론에 대한 우리의 비판을 다투는 데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그들은 그것이 유용한 진전이었다는 점, 그리고 일차 규칙들과 이차 규칙들의 결합이 위협에 의해 뒷받침된 명령들보다 법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으로서 기실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할 수도 (p. 156) 있다. 그러나 그들의 논변은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 즉 이러한 요소들조차 부차적(subordinate) 중요성만을 가지며, 도덕과의 ‘필연적’ 관계가 명시되고 그 중심적 중요성이 이해되기 전까지는 법 이해를 그토록 오래 흐려 온 안개가 걷힐 수 없다는 것일 터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법의 의심스럽거나 다툴 수 있는 사례들은 단지 입법부, 강제 관할권을 가진 법원들, 중앙적으로 조직된 제재들을 결여했기 때문에 의심스러운 것으로 여겨져 온 원시 사회들의 법이나 국제법만은 아닐 것이다. 이 관점에서 훨씬 더 의심스러운 것은, 판사, 경찰, 입법자(juge, gendarme et legislateur)의 완비된 구성요소들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정의(justice)나 도덕(morality)의 일정한 근본 요건들에 부합하지 못하는 국내 법체계들(municipal systems)이 법으로 취급될 자격(title)을 가지는가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의 말처럼1, “정의 없는 국가란 확대된 도적 떼가 아니고 무엇인가?”

법과 도덕 사이에 필연적 연결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여러 중요한 변형들을 가지며, 그 모두가 명료함으로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다. 핵심 용어들인 ‘필연적’(necessary)과 ‘도덕’(morality)에는 가능한 해석들이 많이 있으며, 옹호자들이든 비판자들이든 이것들을 언제나 구별하여 따로 고려한 것은 아니다. 이 관점의 가장 명료한 형태는, 아마도 그것이 이 관점의 가장 극단적인 표현 형식이기 때문에, 토마스주의(Thomist tradition)의 자연법(Natural Law) 전통과 결부된 형태일 것이다. 이것은 이중의 논지(contention)를 포함한다. 첫째, 신적 기원을 가지더라도 계시(revelation)의 도움 없이 인간 이성에 의해 발견될 수 있는 참된 도덕 또는 정의의 일정한 원칙들이 존재한다는 것, 둘째, 이러한 원칙들과 충돌하는 인간이 만든 법들(man-made laws)은 유효한 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부정의한 법은 법이 아니다(Lex iniusta non est lex).” 이 일반적 관점의 다른 변형들은 도덕 원칙들의 지위와 법과 도덕 사이 충돌의 귀결 모두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취한다. 어떤 이들은 도덕을 불변의 행위 원칙들이나 이성에 의해 발견 가능한 것으로 파악하지 않고, 행위에 대한 인간의 태도들의 표현, 곧 사회마다 또는 개인마다 달라질 수 있는 태도들의 표현으로 파악한다. 이 형태의 이론들은 대개, 법과 도덕의 가장 근본적인 요건들 사이의 충돌조차도 그 자체로는 어떤 규칙에서 법으로서의 지위를 (p. 157) 박탈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그들은 법과 도덕 사이의 ‘필연적’ 연결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그들은 하나의 법체계가 존재하려면 법에 복종할 도덕적 의무에 대한, 반드시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광범위하게 퍼진 인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이 의무가 특정한 경우들에서는 도덕적으로 사악한 특정 법들에 복종하지 않을 더 강한 도덕적 의무에 의해 압도될 수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법과 도덕 사이의 필연적 연결을 단언하는 이론들의 서로 다른 변형들을 완전히 평가하려면 우리는 도덕 철학(moral philosophy)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적은 작업으로도 사려 깊은 독자가 그러한 주장들의 진리와 중요성에 관하여 이유 있는 견해를 형성할 만큼은 제공될 수 있다. 이 목적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가 이 장과 다음 장에서 검토할, 오래 얽혀 온 몇몇 쟁점들을 분리하고 식별하는 일이다. 이 쟁점들 가운데 첫째는 도덕(morality)의 일반 영역 안에서 정의(justice)라는 특정한 관념(idea)을 구별하는 일과, 그 관념이 법과 유달리 밀접한 연결을 가지게 하는 특수한 특징들에 관한 것이다. 둘째는 도덕 규칙들과 원칙들을 법규칙들뿐 아니라 다른 모든 형태의 사회 규칙 또는 행위 기준들로부터 구별해 주는 특징들에 관한 것이다. 이 두 쟁점이 이 장의 주제이며, 다음 장의 주제가 되는 셋째 쟁점은 법규칙들과 도덕이 관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많은 서로 다른 의미들과 방식들에 관한 것이다.

1. 정의의 원칙들 (Principles of Justice)

법률가들이 법이나 그 집행을 칭찬하거나 비난할 때 가장 자주 사용하는 용어들은 ‘정의로운(just)’과 ‘부정의한(unjust)’이라는 말이며, 그들은 매우 자주 정의(justice)와 도덕(morality)이라는 관념들이 같은 범위를 가지는 것처럼 쓴다. 기실 법적 장치들(legal arrangements)에 대한 비판에서 정의가 가장 두드러진 자리를 가져야 할 아주 좋은 이유들이 있다. 그러나 정의가 도덕의 구별되는 한 부분(segment)이라는 점, 그리고 법들과 법들의 집행은 서로 다른 종류의 탁월성들(excellences)을 가지거나 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도덕 판단의 몇 가지 흔한 유형들에 관하여 아주 조금만 숙고해도 정의의 이러한 특수한 성격은 드러난다. 자기 아이에게 심한 잔혹행위를 한 사람은 흔히 도덕적으로 그른(wrong), 나쁜(bad), 심지어 사악한(wicked) 일을 했거나, 자기 아이에 대한 도덕적 의무(obligation) 또는 책무(duty)를 무시했다고 (p. 158) 판단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행위를 부정의하다(unjust)고 비판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다. 이는 ‘부정의한(unjust)’이라는 말의 비난력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의 또는 부정의의 용어들로 하는 도덕적 비판의 초점(point)이, 이 특정한 경우에 적절하고 ‘그른(wrong)’, ‘나쁜(bad)’, ‘사악한(wicked)’ 같은 말들로 표현되는 다른 유형의 일반적 도덕 비판과 보통 다르고 더 특정적이기 때문이다. ‘부정의한(unjust)’이라는 말은, 그 사람이 동일한 과오를 저지른 다른 아이들에게 내려진 벌보다 더 엄한 벌을 주기 위해 자기 아이들 가운데 하나를 자의적으로 골랐거나, 그 아이가 실제로 그른 행위자(wrongdoer)였는지를 확인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어떤 과오(offence)에 대해 그 아이를 벌한 경우에야 적절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인 행위에 대한 비판에서 법에 대한 비판으로 옮겨 갈 때, 우리는 부모가 자녀를 학교에 보내도록 요구하는 법에 대한 승인을 그것이 좋은 법(good law)이라고 말함으로써 표현할 수 있고, 정부 비판을 금지하는 법에 대한 불승인을 그것을 나쁜 법(bad law)이라고 부름으로써 표현할 수 있다. 그러한 비판들은 보통 ‘정의(justice)’와 ‘부정의(injustice)’의 용어들로 표현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정의로운(just)’은 부에 따라 과세 부담을 분배하는 법에 대한 승인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말일 것이며, ‘부정의한(unjust)’은 유색인종이 대중교통 수단이나 공원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에 대한 불승인을 표현하기에 적절할 것이다. 정의로운 것과 부정의한 것이 좋음과 나쁨, 또는 옳음과 그름보다 더 특정적인 도덕 비판의 형식들이라는 점은 다음 사실에서 분명하다. 우리는 어떤 법이 정의로웠기 때문에 좋았다거나, 부정의했기 때문에 나빴다고 이해 가능하게 주장할 수 있지만, 그것이 좋기 때문에 정의로웠다거나 나쁘기 때문에 부정의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정의의 구별되는 특징들과 그것이 법과 가지는 특수한 연결은, 정의롭다(just)와 부정의하다(unjust)의 용어들로 이루어지는 비판들의 대부분이 거의 똑같이 ‘공정한(fair)’과 ‘불공정한(unfair)’이라는 말들로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을 관찰하면 드러나기 시작한다. 공정성(fairness)은 분명 일반 도덕과 같은 범위를 가지지 않는다. 공정성에 대한 참조는 주로 사회생활의 두 상황에서 관련된다. 하나는 우리가 단일한 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개인들의 부류들(classes)이 대우받는 방식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 곧 어떤 부담이나 혜택이 그들 사이에 분배되어야 하는 경우이다. 따라서 전형적으로 공정하거나 불공정한 것은 ‘몫(share)’이다. 둘째 상황은 어떤 손해(injury)가 발생했고 보상(compensation)이나 구제(redress)가 청구되는 경우이다. 이것들이 (p. 159) 정의나 공정성의 용어들로 평가가 이루어지는 유일한 맥락은 아니다. 우리는 분배들(distributions)이나 보상들(compensations)이 정의롭거나 공정하다고 말할 뿐 아니라, 판사(judge)가 정의롭거나 부정의하다고, 재판(trial)이 공정하거나 불공정하다고, 어떤 사람이 정의롭게 또는 부정의하게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것들은 정의 관념(notion of justice)의 파생적 적용들이며, 정의가 분배와 보상의 사안들에 일차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이 이해되면 설명될 수 있다.

정의라는 관념(idea of justice)의 이러한 다양한 적용들 안에 잠재해 있는 일반 원리는, 개인들이 서로에 대하여 일정한 상대적 평등 또는 불평등의 지위를 가질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담들이나 혜택들이 분배되어야 할 때 사회생활의 부침 속에서 존중되어야 할 것이며, 그것이 교란될 때 회복되어야 할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의는 전통적으로 균형(balance) 또는 비례(proportion)를 유지하거나 회복하는 것으로 사유되어 왔고, 그 선도적 격률은 흔히 ‘같은 사례들은 같게 취급하라(Treat like cases alike)’로 정식화된다. 다만 우리는 후자에 ‘그리고 다른 사례들은 다르게 취급하라(and treat different cases differently)’를 덧붙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의의 이름으로 유색인종에게 공공 공원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에 항의할 때, 그러한 비판의 요점은 그 법이 나쁘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그 법은 공공 편의시설의 혜택들을 사람들 사이에 분배하면서 모든 관련 측면에서 같은 사람들 사이를 차별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법이, 예컨대 과세에서 어떤 특수 부문으로부터 특권이나 면제를 철회하기 때문에 정의롭다고 칭찬받는다면, 그 지침이 되는 생각은 특권을 누리는 부류와 공동체의 나머지 사람들 사이에 그들에게 특별 대우를 받을 자격을 부여할 만한 그런 관련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예들만으로도, ‘같은 사례들은 같게, 다른 사례들은 다르게 취급하라(Treat like cases alike and different cases differently)’가 정의라는 관념의 중심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는 불완전하며 보충되기 전에는 행위에 대한 어떤 확정적인 지침도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이는 어떤 인간 집합도 어떤 측면들에서는 서로 닮고 다른 측면들에서는 서로 다르며, 어떤 닮음과 차이들이 관련되는지가 확정되기 전까지 ‘같은 사례들은 같게 취급하라’는 공허한 형식으로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채우려면, 당면한 목적들을 위해 언제 사례들이 같은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차이들이 관련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러한 추가 보충 없이는 우리는 법들이나 다른 사회적 장치들을 부정의하다고 비판할 수 없다. 법이 살해(homicide)를 금지하면서 (p. 160)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살인자들을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취급하는 것은 부정의하지 않다. 기실 법이 그들을 다르게 취급한다면 부정의할 것이며, 이는 제정신인 사람들과 정신 이상인 사람들을 다르게 취급하기를 거부한다면 부정의할 것이라는 점과 같다.

그러므로 정의라는 관념의 구조에는 일정한 복잡성이 있다. 우리는 그것이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는 ‘같은 사례들은 같게 취급하라(Treat like cases alike)’라는 격률로 요약되는 일률적 또는 고정적 특징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주어진 목적에서 사례들이 언제 같거나 다른지를 결정하는 데 사용되는 이동적 또는 가변적 기준이다. 이 점에서 정의는 진짜인 것(genuine), 키가 큰 것(tall), 따뜻한 것(warm)에 대한 관념들(notions)과 같다. 이 관념들은 그것들이 적용되는 사물의 분류에 따라 달라지는 기준에 대한 암묵적 참조를 포함한다. 키 큰 아이가 키 작은 남자와 같은 키일 수 있고, 따뜻한 겨울이 추운 여름과 같은 온도일 수 있으며, 가짜 다이아몬드가 진짜 골동품일 수 있다. 그러나 정의는 이러한 관념들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정의 안에 포함된, 서로 다른 사례들 사이의 관련 닮음이라는 이동하는 기준은 그것이 적용되는 대상의 유형에 따라 달라질 뿐 아니라, 단일한 대상 유형과 관련해서도 종종 다툼에 열려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실 어떤 경우들에서는, 법적 장치들을 정의롭거나 부정의하다고 비판하는 데 관련되는 인간들 사이의 닮음들과 차이들이 매우 명백하다. 이는 특히 우리가 특정 사례들에서 법(law)의 정의 또는 부정의가 아니라 그 적용(application)의 정의 또는 부정의에 관심을 가질 때 그러하다. 여기서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주목해야 하는 개인들 사이의 관련 닮음들과 차이들이 법 자체에 의해 결정된다. 살인에 관한 법이 정의롭게 적용된다고 말하는 것은, 그 법이 법이 금지한 일을 했다는 점에서 같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오직 그러한 사람들에게만 불편부당하게 적용된다는 말이다. 어떤 편견이나 이해관계도 집행자를 그들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데서 벗어나게 하지 않았다. 이와 일관되게, ‘audi alteram partem’, 곧 ‘다른 쪽의 말을 들어라’, ‘누구도 자기 자신의 사건에서 판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와 같은 절차적 기준들은 정의의 요건들로 사유되며, 영국과 미국에서는 종종 자연적 정의(Natural Justice)의 원칙들로 지칭된다. 이는 그것들이 불편부당성(impartiality) 또는 객관성(objectivity)의 보증들이며, 법이 법 자체가 지목한(marked out) 관련 측면에서 같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오직 그러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도록 확보하기 위해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p. 161) 정의의 이러한 측면과 규칙에 의해 진행한다는 바로 그 관념(notion) 사이의 연결은 명백히 매우 밀접하다. 기실, 서로 다른 사례들에 법을 정의롭게 적용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사례들에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편견, 이해관계, 변덕 없이 동일한 일반 규칙이라는 단언(assertion)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법 집행에서의 정의와 규칙이라는 바로 그 관념 사이의 이러한 밀접한 연결은 몇몇 유명한 사상가들을 정의를 법에의 부합(conformity to law)과 동일시하도록 유혹해 왔다. 그러나 ‘법(law)’에 어떤 특별히 넓은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한 이것은 분명 오류이다. 그러한 정의 설명은 정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비판이 특정 사례들에서의 법 집행에 국한되지 않고, 법들 자체도 자주 정의롭거나 부정의한 것으로 비판된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않은 채 남겨 두기 때문이다. 기실 유색인종의 공원 출입을 금지하는 부정의한 법이, 그 법을 위반한 데 실제로 유죄인 사람들만이, 그리고 그 경우에도 공정한 재판 뒤에야 그 법 아래에서 처벌되었다는 점에서 정의롭게 집행되었다고 인정하는 데에는 아무 부조리도 없다.

법 집행의 정의 또는 부정의에서 이러한 용어들로 법 자체를 비판하는 일로 넘어가면, 법 자체는 이제 그 법의 규칙들이 같은 사례들을 같게 취급하여 정의로울 수 있으려면 개인들 사이의 어떤 닮음들과 차이들을 법이 인정해야 하는지를 확정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하다. 따라서 여기에는 의심과 다툼의 여지가 많다. 일반적인 도덕적·정치적 전망의 근본적 차이들은, 법을 부정의한 것으로 비판하는 데 인간 존재의 어떤 특징들이 관련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지에 관하여 화해 불가능한 차이와 의견 불일치를 낳을 수 있다. 예컨대 앞의 사례에서 우리가 유색인종의 공원 출입을 금지하는 법을 부정의하다고 낙인찍은 것은, 적어도 그러한 편의시설들의 분배에서는 피부색의 차이들이 관련성이 없다는 전제 위에서였다. 현대 세계에서는, 어떤 피부색이든 인간 존재들이 사고, 감정, 자기 통제의 능력을 가진다는 사실이 법이 주목해야 할 그들 사이의 핵심적 닮음들(crucial resemblances)을 구성한다는 점이 일반적으로, 비록 보편적으로는 아니지만, 받아들여질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문명국가들에서는 형사법(criminal law)이 자유를 제한할 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해악으로부터 보호를 제공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민사법(civil law)이 해악에 대한 (p. 162) 구제(redress)를 제공하는 것으로 파악되는 한, 그러한 부담들과 혜택들의 분배에서 피부색이나 종교적 신념 같은 특징들을 참조하여 사람들 사이를 차별한다면 양자가 모두 부정의할 것이라는 데 상당한 합의가 있다. 그리고 법이 이러한 잘 알려진 인간적 편견의 초점들(foci) 대신 키, 몸무게, 아름다움처럼 명백히 무관련한 것들을 참조하여 차별한다면, 그것은 부정의할 뿐 아니라 우스꽝스러울 것이다. 국교회에 속한 살인자들이 사형에서 면제된다면, 귀족들만이 명예훼손으로 소를 제기할 수 있다면, 유색인에 대한 폭행이 백인에 대한 폭행보다 덜 엄하게 처벌된다면, 그 법들은 대부분의 현대 공동체들에서, 일응(prima facie) 인간 존재들은 같게 대우되어야 하며 이러한 특권들과 면제들은 아무런 관련 근거에도 기초하고 있지 않다는 전제 위에서 부정의한 것으로 단죄될 것이다.

기실 일응 인간 존재들이 같게 대우받을 자격이 있다는 원칙은 현대인 안에 매우 깊이 박혀 있어서, 법들이 피부색과 인종 같은 사안들을 참조하여 차별하는 곳에서도 거의 보편적으로 적어도 말뿐인 경의(lip-service)는 여전히 이 원칙에 널리 바쳐진다. 그러한 차별들이 공격받으면, 그것들은 흔히 차별받는 부류(class)가 일정한 본질적 인간 속성들을 결여하거나 아직 발달시키지 못했다는 단언(assertion)에 의해 방어된다. 또는 유감스럽지만 그들의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정의의 요구들(demands of justice)은, 그러한 차별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위태로워질 더 큰 가치로 여겨지는 어떤 것을 보존하기 위해 제쳐져야 한다고 말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말뿐인 경의가 이제 일반적이라 하더라도,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러한, 종종 진정성 없는 장치들에 의존하지 않고, 일응 인간 존재들이 같게 대우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도덕(morality)을 상상하는 것은 분명 가능하다. 대신 인간 존재들은 자연적으로 그리고 바꿀 수 없게 일정한 부류들(classes)로 나뉘며,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유롭기에 자연적으로 적합하고 다른 이들은 그들의 노예, 곧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대로 타인들의 살아 있는 도구(living instruments)가 되기에 자연적으로 적합하다고 생각될 수 있다. 여기에는 인간들 사이의 일응의 평등(prima-facie equality)이라는 감각이 부재할 것이다. 이 견해의 일부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에게서 발견되지만, 거기서조차 노예제에 대한 완전한 방어는 노예화된 자들이 독립적 존재를 위한 능력을 결여했거나 좋은 삶(good life)의 어떤 이상을 실현할 능력에서 자유인들과 달랐음을 보여주는 일을 수반할 것이라는 암시가 강하게 존재한다.

(p. 163) 그러므로 관련 닮음들과 차이들의 기준들은 주어진 개인이나 사회의 근본적 도덕 전망에 따라 자주 달라질 수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한 경우 법의 정의 또는 부정의에 대한 평가들은 서로 다른 도덕에서 영감을 받은 반대 단언들(counter-assertions)에 부딪힐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문제된 법이 인정된 바와 같이 실현하도록 설계된 목적(object)을 고려하면 정의로운 법이 인정해야 할 닮음들과 차이들이 명료해질 수 있으며, 그때 그것들은 거의 다툼에 열려 있지 않을 수 있다. 어떤 법이 빈곤 구제를 마련한다면, ‘같은 사례들은 같게 취급되어야 한다(Like cases be treated alike)’는 원칙의 요구는 분명 구제 청구자들(claimants)의 필요(need)에 주목하는 일을 수반할 것이다. 유사한 필요의 기준은 과세 부담이 누진소득세에 의해 과세되는 개인들의 부에 맞추어 조정될 때 암묵적으로 인정된다. 때로 관련되는 것은 문제된 법의 행사가 관계될 수 있는 특정 기능에 대한 사람들의 능력들(capacities)이다. 아동들이나 정신 이상인 사람들을 선거권에서 배제하거나, 그들에게 유언장을 작성하거나 계약을 체결할 권한(power)을 주지 않는 법들은 정의로운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한 사람들은 제정신인 성인들이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러한 제도적 수단들을 이성적으로 사용할 능력을 결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차별들은 명백히 관련되는 근거들 위에서 이루어지는 반면, 이 사안들에서 성별 사이의 차별이나 서로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 사이의 차별은 그렇지 않다. 물론 여성이나 유색인들의 종속을 방어하면서, 여성이나 유색인들이 백인 남성의 이성적 사고와 결정 능력을 결여한다고 논변되어 왔다. 그러나 그렇게 논변하는 것은, 그러한 능력이 여성들이나 유색인들에게 결여되어 있다는 아무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는 다시금 이 원칙에 말뿐인 경의를 바칠 뿐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법의 경우 특정 기능에 대한 동등한 능력이 정의의 기준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개인들 사이에 부담들과 혜택들을 분배하는(distributing) 것으로 볼 수 있는 법들의 정의 또는 부정의를 고려하였다. 그 혜택들 가운데 일부는 빈민 구제나 식량 배급처럼 유형적(tangible)이고, 다른 것들은 형사법이 제공하는 신체적 해악으로부터의 보호, 유언능력 또는 계약체결능력에 관한 법들이 제공하는 제도적 수단들(facilities), 또는 투표권(right to vote)처럼 무형적(intangible)이다. 이 넓은 의미의 분배와 구별하여, 우리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한 손해(injury)에 대한 보상(compensation)을 구별해야 한다. 여기서 정의로운 것과 (p. 164) 정의의 중심 격률인 ‘같은 사례들은 같게, 다른 사례들은 다르게 취급하라(Treat like cases alike and different cases differently)’ 사이의 연결은 분명 덜 직접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추적할 수 없을 정도로 간접적인 것은 아니며 다음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불법행위(torts)나 민사상 손해(civil injuries)에 대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보상하도록 마련하는 법들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이유로 부정의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한편으로 그것들은 불공정한 특권들이나 면제들을 정립할 수 있다. 귀족들만이 명예훼손으로 소를 제기할 수 있거나, 어떤 백인도 유색인에 대한 주거침입이나 폭행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경우가 그러할 것이다. 그러한 법들은 보상의 권리들과 책무들(rights and duties of compensation)의 공정한 분배 원칙들을 직접적으로 위반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법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도 부정의할 수 있다. 불공정한 차별들은 만들지 않으면서도, 도덕적으로는 보상이 마땅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임에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한 특정 유형의 손해에 대한 구제(remedy)를 전혀 마련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안에서 법은 모두를 같게 취급하면서도 부정의할 수 있다.

그러한 법들의 흠(vice)은 그때 부당분배(maldistribution)가 아니라, 타인에게 가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그른 손해들(injuries)에 대한 보상을 모두에게 똑같이 거부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한 부정의한 구제 거부의 가장 조악한 사례는, 함부로 가해진 신체적 해악에 대해 아무도 손해배상(damages)을 받을 수 없는 체계일 것이다. 형사법이 그러한 폭행들을 형벌을 붙여 금지하더라도 부정의는 여전히 남을 것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토록 조악한 사례들은 거의 발견되지 않지만, 광고업자들이 종종 수익성이 있다고 여기는 사생활 침해들에 대해 영국법이 보상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자주 이러한 방식으로 비판되어 왔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마땅한 것으로 여겨지는 곳에서 보상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그른 것으로 여겨지는 어떤 행위에 의해 타인의 비용으로 ‘부당이득(unjust enrichment)’을 허용하는 불법행위법 또는 계약법의 기술적 사항들(technicalities)에 대한 부정의 비난의 핵심(gravamen)이기도 하다.

손해에 대한 보상의 정의와 부정의, 그리고 ‘같은 사례들은 같게, 다른 사례들은 다르게 취급하라(Treat like cases alike and different cases differently)’는 원칙 사이의 연결은, 법 바깥에 법이 관심을 가지는 자들이 일정한 종류의 해로운 행위를 서로 삼가도록 요구할 권리(right)를 가진다는 도덕적 확신(moral conviction)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있다. 적어도 더 거친 (p. 165) 종류의 해악을 금지하는 그러한 상호적 권리들과 의무들의 구조는 모든 사회 집단의 도덕의 기초를 이루지만, 그 전부는 아니다. 그 효과는 자연의 불평등들을 상쇄하기 위해 개인들 사이에 도덕적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인위적인 평등을 창출하는 것이다. 도덕 규범(moral code)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강탈하거나 그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우월한 힘이나 교활함이 그로 하여금 아무 처벌 없이 그렇게 할 수 있게 해 주더라도, 금지할 때, 강한 자와 교활한 자는 약한 자와 단순한 자와 같은 평면 위에 놓인다. 그들의 사례들은 도덕적으로 같아진다. 따라서 도덕을 무시하고 자기 힘을 이용하여 타인을 해하는 강한 사람은, 도덕이 확립한 이 균형 또는 평등의 질서를 뒤흔드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면 정의는 이 도덕적 현상 유지 상태(moral status quo)가 가능한 한 그른 행위자(wrongdoer)에 의해 회복되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단순한 절도의 사례들에서는 이것은 단순히 가져간 물건을 돌려주는 일을 수반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손해들에 대한 보상은 이 원초적 관념(notion)의 확장이다. 타인을 신체적으로 해한 사람은 의도적으로든 과실로든 자기 피해자로부터 무언가를 가져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가 문자 그대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만, 이 비유는 지나치게 억지스럽지 않다. 그는 자기 피해자의 비용으로 이익을 얻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오직 그를 해하려는 자기 욕망을 충족시킨 것이거나 적절한 예방조치를 취할 책무(duty)에 자기 편의를 희생하지 않은 것일 뿐이라 해도 그렇다. 따라서 법들이 정의가 요구하는 곳에서 보상을 마련할 때, 그것들은 피해자와 그른 행위자가 평등의 기반 위에 있고 따라서 같은 자들인 도덕적 현상 유지 상태를, 교란 뒤에 회복하도록 마련함으로써 ‘같은 사례들은 같게 취급하라’는 원칙을 간접적으로 인정한다. 다시 말해, 이 사안들에서 개인들을 상호적 평등의 기반 위에 놓지 않는 도덕 전망도 상상 가능하다. 도덕 규범이 야만인들(Barbarians)에게 그리스인들(Greeks)을 폭행하는 것은 금지하지만, 그리스인들이 야만인들을 폭행하는 것은 허용할 수도 있다. 그러한 경우 야만인은 자신이 한 손해들에 대해 그리스인에게 보상할 도덕적 구속을 지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자신은 그러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없을 수 있다. 여기서 도덕 질서는 피해자와 그른 행위자가 다르게 취급되는 불평등의 질서일 것이다. 우리에게 혐오스러울 수 있는 그러한 전망에서라면, 법은 이 차이를 반영하고 다른 사례들을 다르게 취급할 때에만 정의로울 것이다.

정의에 대한 이 간략한 윤곽에서 우리는 정의의 더 단순한 적용들 가운데 일부만을 고려하였다. 정의로운 것으로 평가되는 법들에 귀속되는 특정한 탁월성의 형식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p. 166) 이것은 법들이 가지거나 결여할 수 있는 다른 가치들과 구별될 뿐 아니라, 때로는 정의의 요구들이 다른 가치들과 충돌할 수도 있다. 이는 범죄가 만연해진 때 법원이 특정 범죄자에게 형을 선고하면서, 다른 유사한 사례들에서 내려진 것보다 더 엄한 형을 내리고, 공공연히 이것을 ‘경고로서’ 행하는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 여기에는 ‘같은 사례들은 같게 취급하라’는 원칙을 사회의 일반적 안전 또는 복지에 희생시키는 일이 있다. 민사 사건들에서는, 법이 어떤 도덕적으로 그른 행위(moral wrong)에 대해 구제(remedy)를 마련하지 않을 때, 정의와 일반선(general good) 사이의 유사한 충돌이 후자에 유리하게 해소된다. 그러한 경우들에서 보상을 집행하는 일이 증명의 큰 난점들을 수반하거나, 법원들에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기업 활동을 부당하게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든, 도덕적으로 그른 행위가 행해진 경우에도 감당할 수 있는 법 집행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 반대로 법은 사회의 일반 복지의 이름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도덕적으로 정의의 사안으로는 마땅하다고 생각되지 않을 곳에서도 보상을 강제할 수 있다. 이는 불법행위 책임이 엄격한 경우, 즉 해할 의도나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과 독립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자주 말해진다. 이러한 책임 형식은 때때로 ‘사회’의 이익상 우연히 손해를 입은 자들이 보상받아야 하며, 이를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무리 주의 깊게 통제되더라도 그러한 사고들을 낳는 활동을 하는 자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는 근거 위에서 방어된다. 그들은 보통 충분한 재정적 여력(deep pockets)과 보험에 가입할 기회를 가진다. 이러한 방어가 제시될 때 그 안에는 사회의 일반 복지에 대한 암묵적 호소가 있으며, 그것은 도덕적으로 수용 가능하고 때로는 심지어 ‘사회적 정의(social justice)’라고 불릴 수도 있지만, 두 개인 사이의 현상 유지 상태를 가능한 한 시정(redress)하는 데 단순히 관심을 가지는 일차적 정의 형식들과는 다르다.

정의의 관념들과 사회적 선 또는 복지의 관념들 사이의 중요한 접합점(juncture point)에 주목해야 한다. 모든 개인들에게 똑같이 받아들여지거나 그들의 복지를 증진하는 사회적 변화들이나 법들은 매우 드물다. 경찰 보호나 도로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필요들을 마련하는 법들만이 여기에 가까이 갈 뿐이다. 대부분의 경우 법은 다른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을 박탈하는 대가로만 인구의 한 부류에게 혜택들을 제공한다. 빈자들을 위한 마련은 (p. 167) 다른 사람들의 재화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모두를 위한 의무 학교교육은 자기 자녀를 사적으로 교육하려는 사람들에게 자유의 상실을 의미할 뿐 아니라, 산업에서의 자본 투자나 노령연금 또는 무상 의료서비스를 줄이거나 희생시키는 대가로만 재정이 마련될 수 있다. 그러한 경쟁하는 대안들 사이에서 선택이 이루어졌을 때, 그것은 ‘공익(public good)’ 또는 ‘공동선(common good)’을 위한 것이었다는 근거 위에서 적절한 것으로 방어될 수 있다. 여러 대안들이 공동선에 기여하는 바를 측정하고 더 큰 것을 식별할 척도는 없어 보이므로, 이 문구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공동체의 모든 부문들의 이익들에 대한 사전 고려 없이 이루어진 선택은 단지 당파적이고 부정의한 것으로 비판에 열려 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입법 전에 모두의 청구들(claims)이 불편부당하게 고려되었다면, 결과적으로 한 부문의 청구들이 다른 부문들의 청구들에 종속되었더라도, 그것은 비난(imputation)에서 벗어날 것이다.

기실 어떤 사람들은 서로 다른 부류들이나 이익들의 경쟁하는 청구들 사이의 선택이 ‘공동선을 위하여’ 이루어졌다는 주장(claim)이 사실상 의미할 수 있는 전부는, 모두의 청구들이 결정 전에 이렇게 불편부당하게 검토되었다는 것이라고 논변할 수도 있다. 이것이 참인지 아닌지와 무관하게, 이 의미에서의 정의가 공동선을 위한 것이라고 자처하는 어떤 입법적 선택이든 충족해야 할 적어도 하나의 필요조건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논의한 단순한 형식들과 다른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의 추가 측면을 가진다. 여기서 정의롭게 ‘분배되는’ 것은 그것을 청구하는 사람들의 부류 사이의 어떤 특정 혜택이 아니라, 서로 다른 혜택들에 대한 경쟁하는 청구들에 대한 불편부당한 주목(attention)과 고려(consideration)이기 때문이다.

2. 도덕적 의무(Moral Obligation)와 법적 의무(Legal Obligation)

정의(Justice)는 도덕의 한 부분을 구성하며, 주로 개인의 행위(conduct)가 아니라 개인들의 부류들(classes)이 대우받는 방식들에 관심을 가진다. 바로 이것이 정의에 법과 다른 공적 또는 사회적 제도들을 비판할 때 그 특수한 관련성(relevance)을 부여한다. 정의는 미덕들(virtues) 가운데 가장 공적이고 가장 법적인 것이다. 그러나 정의의 원칙들은 도덕이라는 관념(idea of morality)을 고갈시키지 않으며, 도덕적 (p. 168) 근거들 위에서 이루어지는 법에 대한 모든 비판이 정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법들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나쁜 것으로 비난될 수 있다. 그것들이 도덕이 개인들에게 하지 말라고 금지하는 특정 행위들을 사람들에게 하라고 요구하거나, 도덕적으로 의무적인 행위들을 삼가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덕에 속하고 행위를 도덕적으로 의무적인 것으로 만드는, 개인들의 행위에 관한 원칙들(principles), 규칙들(rules), 기준들(standards)을 일반적 용어들로 특징지을 필요가 있다. 여기서 두 가지 관련된 난점이 우리 앞에 놓인다. 첫째, ‘도덕(morality)’이라는 말과 ‘윤리(ethics)’처럼 그와 관련되거나 거의 동의어인 모든 다른 용어들은 상당한 정도의 모호성(vagueness) 또는 ‘개방적 직조(open texture)’의 영역을 가진다. 어떤 형태의 원칙이나 규칙은 어떤 이들에게는 도덕적인 것으로 분류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둘째, 이 점에 대한 합의가 있고 일정한 규칙들 또는 원칙들이 도덕에 속한다는 점이 다툼 없이 받아들여지는 경우에도, 그것들의 지위(status) 또는 인간 지식과 경험의 나머지 부분과의 관계에 관해서는 여전히 큰 철학적 불일치가 있을 수 있다. 그것들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 지성에 의한 발견을 기다리는, 우주의 직물(fabric)의 일부를 구성하는 불변의 원칙들인가? 아니면 변화하는 인간 태도들, 선택들, 요구들, 또는 감정들의 표현인가? 이것들은 도덕철학의 두 극단을 조야하게 정식화한 것이다. 그 사이에는 도덕의 본성을 해명하려는 노력 속에서 철학자들이 발전시켜 온 많은 복잡하고 미묘한 변형들이 놓여 있다.

이하에서 우리는 이러한 철학적 난점들을 피하려 할 것이다. 우리는 뒤에서2 ‘중요성(Importance)’, ‘의도적 변경으로부터의 면역성(Immunity from deliberate change)’, ‘도덕적 위반행위들의 자발적 성격(Voluntary character of moral offences)’, ‘도덕적 압력의 형식(The form of moral pressure)’이라는 표제들 아래, 가장 일반적으로 ‘도덕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행위의 원칙들, 규칙들, 기준들에서 언제나 함께 발견되는 네 가지 주된 특징들을 식별할 것이다. 이 네 특징들은 그러한 기준들이 사회생활이나 개인들의 삶에서 수행하는 특징적이고 중요한 기능의 서로 다른 측면들을 반영한다. 이것만으로도 이 네 특징들을 가진 것이 무엇이든 별도의 고려를 위해, 무엇보다도 법과의 대비 및 비교를 위해, 따로 획정할 정당한 이유가 될 것이다. (p. 169) 더 나아가 도덕이 이 네 특징들을 가진다는 주장은 그 지위(status) 또는 ‘근본적’ 성격에 관한 경쟁하는 철학 이론들 사이에서 중립적이다. 거의 모든 철학자들은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이 네 특징들이 어떤 도덕 규칙이나 원칙에서도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할 것이다. 비록 도덕이 그것들을 가진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매우 다른 해석이나 설명을 제시하겠지만 말이다. 기실 이 특징들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오직 필요할 뿐이고, 더 엄격한 검사라면 도덕에서 배제될 일정한 행위 규칙들이나 원칙들로부터 도덕을 구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반론들이 근거하는 사실들을 언급하겠지만, ‘도덕(morality)’의 더 넓은 의미를 고수할 것이다. 우리의 정당화는 이것이 많은 용례와 부합한다는 점과, 이 넓은 의미에서 그 말이 지칭하는 것이 사회적·개인적 삶에서 중요하고 구별 가능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 모두에 있다.

우리는 먼저 주어진 사회의 ‘그(the) 도덕’ 또는 실제 사회 집단의 ‘수용된(accepted)’ 도덕이나 ‘관행적(conventional)’ 도덕으로 자주 지칭되는 사회 현상을 고려할 것이다. 이 문구들은 특정 사회 안에서 널리 공유되는 행위 기준들을 지칭하며, 개인의 삶을 지배할 수 있지만 그가 함께 사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와 공유하지는 않는 도덕 원칙들이나 도덕 이상들과 대비된다. 사회 집단의 공유되거나 수용된 도덕의 기본 요소는, 우리가 앞서 제V장에서 의무(obligation)의 일반 관념을 해명할 때 이미 서술했고 거기서 의무의 일차 규칙들(primary rules of obligation)이라고 부른 종류의 규칙들로 이루어진다. 이 규칙들은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중대한 사회적 압력과, 그것들에 대한 준수(compliance)가 수반하는 개인적 이익 또는 경향성(inclination)의 상당한 희생이라는 두 점에서 다른 규칙들과 구별된다. 같은 장에서 우리는 또한 그러한 규칙들이 사회 통제의 유일한 수단이었던 단계의 사회를 그렸다. 우리는 그 단계에서는 더 발전한 사회들에서 법규칙들과 도덕 규칙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명확한 구별에 상응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어떤 규칙들은 주로 불복종에 대한 처벌의 위협들에 의해 유지되고, 다른 규칙들은 규칙들에 대한 추정된 (p. 170) 존중이나 죄책감 또는 후회의 감정들에 대한 호소에 의해 유지된다면, 이 구별의 어떤 발생 초기 형태가 존재할 수도 있다. 이 초기 단계가 지나고 전법적(pre-legal) 세계에서 법적 세계로의 걸음이 이루어져, 사회 통제의 수단이 이제 승인, 재판, 변경의 규칙들을 포함하는 규칙 체계를 포함하게 되면, 법규칙들과 다른 규칙들 사이의 이 대비는 어떤 확정적인 것으로 굳어진다. 공식 체계(official system)를 통해 식별되는 의무의 일차 규칙들은 이제 공식적으로 인정된(officially recognized) 규칙들과 나란히 계속 존재하는 다른 규칙들로부터 구분된다. 사실 우리 공동체에서, 그리고 기실 이 단계에 도달한 모든 공동체에서, 법체계 바깥에 놓인 여러 유형의 사회 규칙과 기준들이 존재한다. 이들 가운데 일부만이 보통 도덕적인 것으로 생각되고 말해지지만, 어떤 법이론가들은 모든 비법적 규칙들을 지칭하기 위해 ‘도덕적(moral)’이라는 말을 사용해 왔다.

그러한 비법적 규칙들은 여러 서로 다른 방식들로 구별되고 분류될 수 있다. 어떤 것들은 매우 제한된 범위의 규칙들로서 특정 행위 영역(예: 복장)이나,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간헐적 기회들만 있는 활동들(의례와 게임)에 관한 것이다. 어떤 규칙들은 사회 집단 일반에 적용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른 규칙들은 그 안의 특수 하위집단들, 곧 일정한 특징들에 의해 구별되는 별개의 사회 부류로서의 하위집단들이나, 제한된 목적들을 위해 만나거나 결합하기로 한 그들 자신의 선택에 의해 구별되는 하위집단들에 적용된다. 어떤 규칙들은 합의에 힘입어 구속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자발적 탈퇴를 허용할 수 있다. 다른 규칙들은 합의나 다른 어떤 형태의 의도적 선택에도 기원을 두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어떤 규칙들은 위반될 때 해야 할 ‘옳은(right)’ 일에 대한 단언(assertion)이나 상기(reminder) 이상을 만나지 않을 수 있고(예: 예절 또는 올바른 말의 규칙들), 다른 규칙들은 중대한 비난이나 경멸, 또는 관련 결사체로부터의 더 길거나 짧은 배제를 만날 수 있다. 정확한 척도는 구성될 수 없겠지만, 이러한 서로 다른 유형의 규칙들에 귀속되는 상대적 중요성에 관한 구상(conception)은 그것들이 요구하는 사적 이익의 희생 정도와 부합(conformity)을 위한 사회적 압력의 무게 모두에 반영된다.

법체계를 발전시킨 모든 사회들에는 그 비법적 규칙들 가운데 최고의 중요성이 부여되고, 핵심적 차이들(crucial differences)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의 법과 많은 유사성들을 가지는 것들이 있다. 법규칙들의 요구들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권리들(rights)’, ‘의무들(obligations)’, ‘책무들(duties)’의 어휘는 매우 자주 (p. 171) ‘도덕적(moral)’이라는 말을 덧붙여, 이러한 규칙들이 요구하는 행위들이나 자제들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모든 공동체들에는 법적 의무와 도덕적 의무 사이에 내용의 부분적 중첩이 있다. 다만 법규칙들의 요구들은 더 특정적이고 그 도덕적 대응물들보다 더 상세한 예외들로 둘러싸여 있다. 특징적으로, 도덕적 의무와 책무는 많은 법규칙들처럼, 의도적으로 선택된 경우들에서의 드물거나 간헐적인 활동들이 아니라 집단의 삶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상황들에서 무엇이 행해져야 하거나 행해지지 말아야 하는지를 다룬다. 그러한 규칙들이 요구하는 것은 자제들(forbearances)이거나, 그 수행에 어떤 특수한 기술이나 지능도 요구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단순한 행위들이다. 도덕적 의무들은 대부분의 법적 의무들처럼 어떤 정상 성인에게도 가능한 능력 범위 안에 있다. 이러한 도덕 규칙들의 준수(compliance)는 법규칙들의 준수와 마찬가지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위반은 중대한 비난을 불러오지만, 도덕적 의무에 대한 부합(conformity)은, 다시 법에 대한 복종처럼, 예외적인 양심성(conscientiousness), 인내(endurance), 또는 특별한 유혹에 대한 저항으로 표시될 때를 제외하면 칭찬의 대상이 아니다. 도덕적 의무들과 책무들에 대해서는 여러 분류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일부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차지하지는 않는 비교적 구별되고 지속적인 기능들이나 역할들에 속한다. 아버지나 남편이 가족을 돌볼 책무들이 그러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정상 성인들이 평생 동안 가진 것으로 파악되는 일반 의무들(예: 폭력을 삼갈 의무)과, 그러한 구성원이 타인들과 특수한 관계들에 들어감으로써 부담하게 될 수 있는 특수 의무들(예: 약속을 지키거나 받은 서비스를 되돌려 줄 의무)이 모두 있다.

이 가장 근본적인 종류의 도덕 규칙들에서 인정되는 의무들과 책무들은 사회마다 달라질 수 있고, 단일한 사회 안에서도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집단의 건강이나 안전을 위해 요구된다고 여겨지는 것에 관한 상당히 잘못된 또는 심지어 미신적인 믿음들을 반영할 수 있다. 어떤 사회에서는 아내가 남편의 장례용 장작더미에 몸을 던지는 것이 그녀의 책무일 수 있고, 다른 사회에서는 자살이 공통 도덕(common morality)에 대한 위반(offence)일 수 있다. 도덕 규범들(moral codes) 사이에는 주어진 사회의 특수하지만 실제적인 필요들에서 생겨날 수도 있고, 미신이나 무지에서 생겨날 수도 있는 다양성이 있다. 그러나 법과 구별될 수 있는 단계에 이른 사회들의 사회적 도덕(social morality)은, 인간들과 그들이 사는 세계가 가장 친숙하고 명백한 특성들 가운데 일부를 유지하는 한, 어떤 사회의 생존에도 본질적인 사적 경향성 또는 이익의 희생을 요구하는 일정한 의무들과 책무들을 언제나 포함한다. 사회생활에 명백히 요구되는 그러한 규칙들 가운데에는 폭력의 자유로운 사용을 금지하거나 적어도 제한하는 규칙들, 타인들과의 거래에서 일정한 형식의 정직성과 진실성을 요구하는 규칙들, 유형물들의 파괴나 타인들로부터의 탈취를 금지하는 규칙들이 있다. 가까이 함께 사는 어떤 개인들의 집단 안에서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규칙들에 대한 부합(conformity)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집단을 사회로 서술하는 데 의심을 품을 것이며, 그것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을 확신할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적 및 법적 의무와 책무의 규칙들은, 그 공통 어휘가 우연이 아님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일정한 두드러진 유사성들을 가진다. 이것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그것들은 구속되는 개인의 동의와 독립적으로 구속적인 것으로 파악되고, 부합(conformity)을 위한 중대한 사회적 압력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점에서 같다. 법적 의무들과 도덕적 의무들 모두의 준수(compliance)는 칭찬의 대상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사회생활에 대한 최소한의 기여로 간주된다. 더 나아가 법과 도덕은 모두 특수한 활동들이나 경우들이 아니라 삶 전체에 걸쳐 끊임없이 반복되는 상황들에서 개인들의 행위를 규율하는 규칙들을 포함하며, 양자 모두 특정 사회의 실제적 또는 상상된 필요들에 특유한 많은 것을 포함할 수 있지만, 함께 살아가는 데 성공하려는 어떤 인간 집단에 의해서도 명백히 충족되어야 하는 요구들을 한다. 따라서 사람 또는 재산에 대한 폭력 금지의 일부 형식들과 정직성 및 진실성의 일부 요구들은 양자 모두에서 발견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사성들에도 불구하고, 법과 도덕이 공유할 수 없는 일정한 특징들이 존재한다는 점은 많은 이들에게 명백해 보였다. 비록 법리학(jurisprudence)의 역사에서 이것들은 정식화하기 가장 어려운 것들임이 드러났지만 말이다.

그 본질적 차이를 요약적으로 전달하려는 가장 유명한 시도는, 법규칙들은 ‘외부(external)’ 행위만을 요구하고 행위의 동기들, 의도들, 또는 다른 ‘내부(internal)’ 수반물들에는 (p. 173) 무관심한 반면, 도덕은 어떤 특정한 외부 행위들도 요구하지 않고 오직 선한 의지(good will)나 적절한 의도들 또는 동기만을 요구한다고 단언하는 이론이다. 이것은 실제로, 올바르게 이해된 법규칙들과 도덕 규칙들은 결코 같은 내용을 가질 수 없다는 놀라운 단언에 이른다. 그리고 그것이 진리의 암시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있는 그대로는 심각하게 오도적이다. 그것은 사실 도덕의 일정한 중요한 특징들, 특히 도덕적 비난과 법적 처벌 사이의 일정한 차이들로부터 나온 추론이지만, 잘못된 추론이다. 어떤 사람이 도덕 규칙들이 금지하는 일을 하거나 그것들이 요구하는 일을 하지 못한 경우, 그가 그것을 비의도적으로 그리고 모든 주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했다는 사실은 도덕적 비난으로부터의 면책(excuse)이다. 반면 법체계나 관습은 규칙들을 비의도적으로 그리고 ‘과실(fault)’ 없이 위반한 자들도 처벌에 책임질 수 있게 하는 ‘엄격책임(strict liability)’ 규칙들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도덕에서 ‘엄격책임’이라는 관념(notion)이 이 영역의 어떤 것 못지않게 용어모순에 가까이 온다는 것은 기실 참이지만, 그것은 법체계에서 발견될 때 단지 비판에 열려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도덕이 오직 선한 의도, 의지, 또는 동기만을 요구한다는 뜻은 아니다. 기실 그렇게 논변하는 것은, 뒤에서 보이듯이, 행위에 대한 면책(excuse)이라는 관념을 정당화(justification)라는 관념과 혼동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혼란된 논변 속에는 중요한 어떤 것이 희화화되어 있다. 법과 도덕(morals) 사이의 차이가 한쪽의 ‘내부성(internality)’과 다른 쪽의 ‘외부성(externality)’ 사이의 대비와 연결되어 있다는 막연한 감각은, 법과 도덕에 관한 사변(speculation)에서 너무 되풀이되는 주제이므로 전적으로 근거 없을 수는 없다. 그것을 폐기하기보다, 우리는 그것을 도덕을 법규칙들뿐 아니라 다른 형태의 사회 규칙들로부터도 집합적으로 구별해 주는 네 가지 주된 관련 특징들의 압축적 진술(compendious statement)로 다룰 것이다.

(i) 중요성(Importance). 어떤 도덕 규칙이나 기준의 본질적 특징은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큰 중요성을 가지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데 있다고 말하는 것은 동어반복적이고 모호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특징은 어떤 사회 집단이나 개인의 도덕에 대한 충실한 설명에서도 생략될 수 없고, 더 정밀하게 만들어질 수도 없다. 그것은 여러 방식으로 드러난다. 첫째, 도덕 기준들은 그것들이 제한하는 강한 정념들의 충동에 맞서, 그리고 상당한 개인적 이익을 희생하는 대가로 유지된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드러난다. 둘째, 개별 사례들에서 부합(conformity)을 얻기 위해서뿐 아니라 도덕 기준들이 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당연한 것으로 가르쳐지거나 전달되도록 확보하기 위해 행사되는 중대한 형식들의 사회적 압력에서 드러난다. 셋째, 도덕 기준들이 일반적으로 수용되지 않는다면 개인들의 삶에서 광범위하고 달갑지 않은 변화들이 발생할 것이라는 일반적 인정에서 드러난다. 도덕과 대조적으로, 품행(deportment), 예절(manners), 복장의 규칙들, 그리고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법규칙들은 중대한 중요성의 척도에서 비교적 낮은 자리를 차지한다. 그것들은 따르기에 성가실 수는 있지만 큰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부합을 얻기 위해 큰 압력이 행사되지 않으며, 그것들이 준수되지 않거나 변경되더라도 사회생활의 다른 영역들에서 큰 변경들이 뒤따르지 않을 것이다. 도덕 규칙들의 유지에 이렇게 귀속되는 중요성의 많은 부분은 매력적인 합리주의적 노선에서 아주 단순하게 설명될 수 있다. 그것들은 구속되는 사람의 사적 이익들의 희생을 요구하더라도, 그것들에 대한 준수(compliance)는 모두가 같이 공유하는 생명적 이익들을 확보한다. 그것은 사람들을 명백한 해악으로부터 직접 보호하거나, 견딜 만하고 질서 있는 사회의 짜임(fabric)을 유지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그러나 많은 사회적 도덕의 합리성이 명백한 해악들로부터의 보호로서 이렇게 방어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단순한 공리주의적 접근이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한 가능한 곳에서도, 그것이 도덕에 따라 사는 사람들의 관점을 대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결국 어떤 사회의 도덕에서든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성적 행위(sexual behaviour)에 관한 규칙들로 이루어지는데, 그 규칙들에 부여되는 중요성이 그것들이 금지하는 행위가 타인들에게 해롭다는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결코 명확하지 않다. 또한 그러한 규칙들이 실제로 언제나 이러한 정당화를 가진다고 보일 수도 없다. 자기 도덕을 신적으로 명령된 것으로 보기를 그만둔 현대 사회에서도, 동성애에 대한 공통의 거부(veto)와 같은 성적 행위의 도덕적 규율에 부여되는 중요성은 타인들에 대한 해악성 계산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성적 기능들과 감정들은 모두에게 그토록 중대한 사안이고 정서적 관심의 대상이어서, 그 표현의 수용된 또는 정상적인 형식들로부터의 일탈들은 쉽게 내재적 ‘수치(pudor)’ 또는 중요성을 띠게 된다. 그것들은 (p. 175) 사회적 해악성에 대한 확신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부자연스러운’ 것 또는 그 자체로 혐오스러운 것으로 혐오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강한 사회적 거부들(social vetoes)에 도덕이라는 명칭(title)을 부인하는 것은 부조리할 것이다. 기실 성적 도덕은 보통 사람들이 도덕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서 아마 가장 두드러진 측면일 것이다. 물론 사회가 자기 자신의 도덕을 이러한 ‘비공리주의적’ 방식으로 본다는 사실은, 그 규칙들의 유지가 쓸모없거나 큰 고통이라는 비용으로 구입된 것으로 판단되는 곳에서, 그 규칙들이 비판이나 비난에서 자유롭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법규칙들은 같은 행위를 요구하거나 금지한다는 의미에서 도덕 규칙들과 대응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법규칙들은 의심할 바 없이 그 도덕적 대응물들만큼 중요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중요성은 도덕의 지위에 본질적인 것과 달리 모든 법규칙의 지위에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법규칙이 유지하기에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일반적으로 생각될 수 있고, 기실 그것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데 일반적 합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폐지될 때까지 법규칙으로 남는다. 반면 어떤 규칙을, 아무도 더 이상 중요하거나 유지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도 어떤 사회의 도덕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부조리할 것이다. 오래된 관습들과 전통들은 기실 한때 도덕 규칙들의 지위를 가졌을 수 있지만, 이제 단지 옛 시절을 위해 유지되는 경우, 그것들의 준수와 위반에 부여되던 중요성과 함께 도덕의 일부로서의 지위도 증발한 것이다.

(ii) 의도적 변경으로부터의 면역성(Immunity from deliberate change). 법체계의 특징은 새로운 법규칙들이 의도적 제정(deliberate enactment)에 의해 도입될 수 있고, 오래된 규칙들이 변경되거나 폐지될 수 있다는 점이다. 비록 어떤 법들은 최고 입법부의 권능(competence)을 제한하는 성문헌법에 의해 변경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다. 그와 대조적으로 도덕 규칙들이나 원칙들은 이런 방식으로 생겨나거나 변경되거나 제거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할 수 없다(cannot)’고 단언하는 것은, 인간이 기후를 바꿀 수 없다는 단언처럼 어떤 상정 가능한 사태가 실제로 그러하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단언은 다음 사실들을 지목한다. ‘1960년 1월 1일부터 이러저러한 일을 하는 것은 범죄가 될 것이다’ 또는 ‘1960년 1월 1일부터 이러저러한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불법이 아닐 것이다’라고 말하고, 제정되거나 폐지된 법들을 참조하여 그러한 진술들을 뒷받침하는 것은 완전히 말이 된다. 그와 대조적으로 ‘내일부터 (p. 176) 이러저러한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비도덕적이지 않을 것이다’ 또는 ‘지난 1월 1일에 이러저러한 일을 하는 것이 비도덕적이 되었다’와 같은 진술들과, 이것들을 의도적 제정에 대한 참조로 뒷받침하려는 시도들은 무의미하지 않다 하더라도 놀라운 역설일 것이다. 도덕이 개인들의 삶에서 수행하는 역할과, 도덕 규칙들, 원칙들, 기준들이 법들처럼 의도적 행위에 의해 창조되거나 변경될 수 있는 것들로 여겨지는 것은 양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위 기준들(standards of conduct)은 인간의 fiat만으로 도덕적 지위를 부여받거나 박탈당할 수 없다. 반면 제정(enactment)과 폐지(repeal) 같은 개념들의 일상적 사용은 법의 경우에는 동일한 것이 참이 아님을 보여준다.

도덕 철학의 많은 부분은 도덕의 이 특징을 설명하고, 도덕이 의도적 인간 선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정되어야 할 ‘거기 있는’ 어떤 것이라는 감각을 해명하는 데 바쳐져 있다. 그러나 그 사실 자체는, 그 설명과 구별되는 것으로서, 도덕 규칙들의 특이성이 아니다. 이것이 도덕의 이 특징이 극히 중요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도덕을 다른 모든 사회 규범 형식들로부터 구별하는 데 쓰일 수 없는 이유이다. 이 점에서는, 다른 점들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모든 사회 전통이 도덕과 같기 때문이다. 전통 역시 인간의 fiat에 의한 제정이나 폐지가 불가능하다. 어쩌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는 이야기, 곧 한 영국 신설 퍼블릭스쿨의 교장이 다음 학기 시작부터 상급생들이 일정한 복장을 입는 것이 그 학교의 전통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는 이야기는, 그 희극적 효과를 전적으로 전통이라는 관념(notion)과 의도적 제정 및 선택이라는 관념의 논리적 양립불가능성에 의존한다. 규칙들은 자라나고 실천되고 실천되기를 멈추고 쇠퇴함으로써 전통의 지위를 획득하고 상실한다. 그리고 이러한 느리고 비자발적인 과정들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생겨나거나 제거된 규칙들은, 그로써 전통의 지위를 획득하거나 상실할 수 없다.

도덕과 전통이 법들처럼 입법적 제정에 의해 직접 변경될 수 없다는 사실은 다른 형태의 변화로부터의 면역성으로 오인되어서는 안 된다. 기실 도덕 규칙이나 전통은 의도적 선택이나 제정에 의해 폐지되거나 변경될 수 없지만, 법들의 제정이나 폐지는 어떤 도덕 기준이나 어떤 전통의 변화 또는 쇠퇴의 원인들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가이 포크스(Guy Fawkes) 밤의 기념행사와 같은 전통적 실천이 (p. 177) 법에 의해 금지되고 처벌된다면, 그 실천은 중단되고 전통은 사라질 수 있다. 반대로 법들이 일정한 부류들에게 군복무를 요구한다면, 이것은 궁극적으로 그들 사이에서 그 법보다 훨씬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전통을 발전시킬 수 있다. 마찬가지로 법적 제정물들(legal enactments)은 정직성과 인간성의 기준들을 세워 궁극적으로 현재의 도덕을 바꾸고 높일 수 있다. 반대로 도덕적으로 의무적이라고 여겨지는 실천들에 대한 법적 억압은 결국 그것들의 중요성 감각, 따라서 도덕으로서의 그것들의 지위를 잃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매우 자주 법은 뿌리 깊은 도덕과의 그러한 싸움에서 패배하며, 도덕 규칙은 자신이 명하는 바를 금지하는 법들과 나란히 완전한 활력으로 계속된다.

법이 인과적 요소일 수 있는 전통과 도덕의 이러한 변화 방식들은 입법적 변경이나 폐지와 구별되어야 한다. 제정으로 인한 법적 지위의 획득이나 상실은, 제정된 제정법(enacted statute)의 ‘법적 효과(legal effect)’라고 기실 말해질 수 있지만, 그것은 제정법이 도덕과 전통에 나중에 미치는 효과(eventual effect)와 같은 우연적 인과 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다음 사실에서 단순히 볼 수 있다. 명확하고 유효한 법적 제정물(legal enactment)이 도덕의 변화로 이어질지는 언제나 의심할 수 있지만, 명확하고 유효한 법적 제정물이 법을 변경했는지에 관해서는 유사한 의심이 품어질 수 없다.

도덕 또는 전통이라는 관념이 의도적 제정에 의한 변경이라는 관념과 양립하지 않는다는 점은, 어떤 체계들에서 헌법의 제한 조항들이 일정한 법들에 부여하는 면역성과도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한 면역성은 법으로서 법의 지위에 필요한 요소가 아니다. 이 면역성은 헌법 개정에 의해 제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입법적 변경으로부터의 그러한 법적 면역성과 달리, 유사한 변화 방식들에 대한 도덕 또는 전통의 무능력(incapacity)은 공동체마다 또는 시기마다 달라지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용어들의 의미 속에 편입되어 있다. 법적 제정물들이 법을 만들고 변경하듯 도덕을 만들고 변경할 권능(competence)을 가진 도덕 입법부라는 관념은 도덕이라는 전체 관념(notion)에 반한다. 국제법을 고려하게 될 때, 우리는 체계의 결함으로 여겨질 수 있는 입법부의 단순한 사실상(de facto) 부재와, 여기서 (p. 178) 강조한 것처럼 도덕 규칙들이나 기준들이 입법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폐지될 수 있다는 관념 안에 잠재해 있는 근본적 비일관성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게 될 것이다.

(iii) 도덕적 위반들의 자발적 성격(Voluntary character of moral offences). 도덕(morals)은 오로지 ‘내부(internal)’인 것에 관심을 가지는 반면 법은 오직 ‘외부(external)’ 행위에 관심을 가진다는 오래된 구상(conception)은, 이미 논의한 두 특징을 부분적으로 잘못 진술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자주 도덕적 책임(moral responsibility)과 도덕적 비난(moral blame)의 일정한 두드러진 특징들에 대한 참조로 다루어진다. ab extra로 판단할 때 그 행위가 도덕 규칙들이나 원칙들을 위반한 어떤 사람이, 가능한 모든 예방조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것을 비의도적으로 했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성공하면, 그는 도덕적 책임에서 면책(excused)되며, 이러한 상황에서 그를 비난하는 것 자체가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도덕적 비난은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기 때문에 배제된다. 어떤 발전된 법체계에서든 같은 점은 어느 정도 참이다. 형사책임에서 일반적인 mens rea 요건은, 부주의 없이, 알지 못한 채, 또는 법에 부합할 신체적·정신적 능력을 결여한 상황들에서 위반한 자들이 면책되도록 확보하기 위해 고안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중대한 처벌을 수반하는 중대한 범죄들의 경우에 법체계는 심각한 도덕적 비난에 열려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법체계들에서 그러한 면책 사유들의 인정은 많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제한된다. 심리적 사실들에 대한 증명의 실제적 또는 주장된 난점들은 법체계로 하여금 특정 개인들의 실제 정신 상태들이나 능력들을 조사하기를 거부하게 하고, 대신 ‘객관적 검사 기준들(objective tests)’을 사용하게 할 수 있다. 그 검사 기준들에 의해 위반행위 혐의를 받는 개인은 정상적이거나 ‘합리적인’ 사람이 가질 통제 능력 또는 예방조치를 취할 능력들을 가진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어떤 체계들은 ‘인지적(cognitive)’ 장애들과 구별되는 ‘의지적(volitional)’ 장애들(disabilities)을 고려하기를 거부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체계들은 면책 사유들의 범위를 의도의 결여나 지식의 결함들에 한정한다. 다시 법체계는 일정한 유형들의 위반행위(offence)에 대해 엄격책임(strict liability)을 부과하고, 어쩌면 피고인이 정상적 근육 통제를 가져야 한다는 최소 요건만을 제외하고 책임을 mens rea와 전적으로 독립시킬 수 있다.

따라서 피고인이 (p. 179) 자신이 위반한 법을 지킬 수 없었음을 보였다고 해서 법적 책임이 반드시 배제되는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그와 대조적으로 도덕에서 ‘나는 어쩔 수 없었다(I could not help it)’는 언제나 면책 사유(excuse)이며, 도덕적 의무는 이 의미에서 도덕적 ‘해야 한다(ought)’가 ‘할 수 있다(can)’를 함의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그것과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쩔 수 없었다’는 오직 면책 사유일 뿐(비록 좋은 면책 사유이기는 하지만)이며, 면책 사유를 정당화(justification)와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말했듯이, 도덕이 외부 행위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이 두 관념의 혼동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선한 의도들이 도덕 규칙들이 금지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정당화라면, 모든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우연히 타인을 죽인 사람의 행위에는 개탄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자기방어의 필요한 수단으로 요구될 때 어떤 사람이 타인을 죽이는 경우를 지금 바라보는 것처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후자는 정당화된다(justified). 그러한 상황에서 살해(killing)는 물론 살해에 대한 일반 금지의 예외이지만, 체계가 방지하는 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심지어 장려할 수도 있는 종류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비의도적으로 위반했기 때문에 면책되는(excused) 경우, 그 밑에 있는 도덕적 구상은 이 행위가 법의 정책상 허용하거나 심지어 환영할 종류의 행위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 위반자의 정신 상태를 조사할 때, 그가 법의 요구들에 부합할 정상 능력을 결여했다는 점을 우리가 발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의 ‘내부성(internality)’의 이 측면은 도덕이 외부 행위의 통제 형식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도덕적 책임의 필요조건이 개인이 자기 행위에 대하여 일정한 유형의 통제를 가져야 한다는 것뿐이다. 도덕에서도 ‘그는 그른 일을 하지 않았다’와 ‘그는 자신이 한 일을 어쩔 수 없이 했다’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iv) 도덕적 압력의 형식(The form of moral pressure). 도덕의 추가적인 구별 특징은 도덕을 뒷받침하기 위해 행사되는 도덕적 압력의 특징적 형식이다. 이 특징은 마지막 특징과 밀접히 관련되며, 그것처럼 도덕이 ‘내부’인 것에 관심을 가진다는 막연한 감각에 강하게 기여해 왔다. 도덕에 대한 이러한 해석으로 이끈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누군가가 행위 규칙을 위반하려 할 때마다, 그를 단념시키기 위한 논변에서 오직 신체적 처벌이나 불쾌한 결과들의 위협들만 사용된다면, 그러한 (p. 180) 규칙을 그 사회의 도덕의 일부로 간주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비록 이것이 그것을 그 사회의 법의 일부로 취급하는 데 대한 반대이유가 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기실 법적 압력의 전형적 형식은 그러한 위협들로 이루어진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반면 도덕에서 전형적 압력 형식은, 규칙들을 그 자체로 중요한 것들로 존중한다는 점, 그리고 그 존중이 말을 듣는 자들에 의해 공유된다고 추정된다는 점에 호소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도덕적 압력은 특징적으로, 비록 배타적으로는 아니지만, 위협들이나 두려움 또는 이익에 대한 호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려 중인 행위의 도덕적 성격과 도덕의 요구들을 상기시키는 것들에 의해 행사된다.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그것은 네 약속을 깨는 것일 것이다.’ 배경에는 기실 처벌에 대한 두려움의 ‘내부’ 도덕 유사물들이 있다. 항의들이 말을 듣는 자들 안에서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일깨울 것이라고 상정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양심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다. 물론 때로 그러한 고유하게 도덕적인 호소들은 신체적 처벌의 위협들이나 통상적 개인 이익에 대한 호소들과 함께 나타난다. 도덕 규범으로부터의 일탈들은 비교적 비공식적인 경멸의 표현들에서부터 사회관계의 단절 또는 배척(ostracism)에 이르는 여러 다른 형식들의 적대적 사회 반응을 만난다. 그러나 규칙들이 요구하는 바를 강조하여 상기시키는 것들, 양심에 대한 호소들, 죄책감과 후회의 작용에 대한 의존은 사회적 도덕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되는 압력의 특징적이고 가장 두드러진 형식들이다. 도덕 규칙들과 기준들이 바로 이러한 방식들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은, 그것들이 유지되는 것이 지극히 그리고 명백히 중요하다고 받아들여진다는 점의 단순한 귀결이다. 이러한 방식들로 뒷받침되지 않는 기준들은 도덕적 의무에 고유한 사회적·개인적 삶에서의 자리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3. 도덕 이상(Moral Ideals)과 사회적 비판(Social Criticism)

도덕적 의무와 책무는 사회적 도덕(social morality)의 기반(bedrock)이지만, 그것들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다른 형식들을 검토하기 전에, 우리가 도덕적 의무를 특징지은 방식에 대한 한 반론을 고려할 것이다. 지난 절에서 우리가 그것을 다른 형식의 사회적 기준 또는 규칙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한 네 가지 기준들(fourfold criteria), 곧 중요성, 의도적 변경으로부터의 면역성, 도덕적 위반행위들의 자발적 성격, 도덕적 압력의 특수한 형식은 어떤 의미에서 형식적(formal) (p. 181) 기준들이다. 그것들은 규칙들이나 기준들이 도덕적이기 위해 가져야 할 어떤 필연적 내용에도, 심지어 그것들이 사회생활에서 봉사해야 할 어떤 목적에도 직접 참조하지 않는다. 우리는 기실 모든 도덕 규범들(moral codes)에서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폭력 사용의 금지 형식, 그리고 진실성(truthfulness), 공정한 거래(fair dealing), 약속들에 대한 존중의 요구들이 발견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인간 본성과 물리적 세계의 성격에 관한 몇 가지 아주 명백한 자명성들(truisms)만 인정한다면, 이러한 것들은 인간 존재들이 가까운 곳에서 계속 함께 살아가기 위해 실제로 필수적임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마련하는 규칙들이 어디에서나 우리가 서술한 도덕적 중요성과 지위를 부여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일 것이다. 그러한 규칙들이 요구하는(demand) 개인적 이익의 희생은 우리와 같은 세계에서 타인들과 살아가기 위해 지불되어야 하는 대가이고, 그것들이 제공하는(afford) 보호는 우리와 같은 존재들에게 타인들과 사는 것을 가치 있게 만드는 최소한이다. 이러한 단순한 사실들은, 다음 장에서 우리가 논변하듯이, 자연법(Natural Law) 교설들 안의 논박할 수 없는 진리의 핵심을 구성한다.

많은 도덕론자들(moralists)은 우리가 제시한 네 가지 기준을 넘어서는 추가 기준으로, 도덕과 인간의 필요들 및 이익들 사이의 이처럼 명백해 보이는 연결을 도덕의 정의 안으로 들여오고 싶어 할 것이다. 그들은 어떤 규칙도, 그것이 그 사회의 규칙인 그 사회에서 인간 이익들의 관점에서 이성적 비판을 견뎌 낼 수 있고, 그래서 그것들을 증진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을 때(어쩌면 어떤 공정하거나 평등한 방식으로)만 도덕의 일부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규정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더 나아가, 그 규칙이 요구하는 자제들(forbearances)과 행위들의 혜택들이 특정 사회의 경계들을 넘어, 그러한 규칙들을 존중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확장되지 않는 한, 어떤 행위 원칙이나 규칙도 도덕적인 것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의도적으로 도덕에 대한 더 넓은 견해를 취하였다. 한 사회의 실제 실천에서 우리가 언급한 네 특징들을 보이는 모든 사회 규칙들과 기준들을 그 안에 포함시키기 위해서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추가로 제안된 이러한 검사 기준들에 비추어 비판을 견뎌 낼 것이고, 다른 것들은 그렇지 못하겠지만 비합리적이거나 계몽되지 않았거나 심지어 야만적인 것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 우리가 이렇게 한 것은 단지 (p. 182) ‘도덕적(moral)’이라는 말의 용례의 무게가 이 더 넓은 의미를 지지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들을 배제하는 더 좁고 제한된 견해를 취하면, 그것에 따라 사는 사람들의 삶 안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기능하는 사회 구조의 요소들을 매우 비현실적인 방식으로 나누도록 강제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타인들을 해하지 않을 수 있는 행위에 대한 도덕적 금지들은, 실제로 해하는 행위에 대한 금지들과 정확히 같은 본능적 존중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더 합리적으로 방어 가능한 규칙들의 요구들과 함께 성격에 대한 사회적 평가들 안으로 들어가며, 그것들과 함께 개인들이 살 것으로 기대되고 기실 살고 있다고 상정되는 삶의 일반적으로 수용된 그림의 일부를 이룬다.

그러나 도덕이 사회 집단들의 실제 실천에서 인정되는 의무들(obligations)책무들(duties)보다 훨씬 많은 것을 포함한다는 점은 참이고 중요하다. 의무와 책무는 도덕의 기반일 뿐이며, 사회적 도덕의 기반일 뿐이기도 하다. 그리고 특정 사회들의 수용되고 공유된 도덕을 넘어 확장되는 도덕의 형식들이 있다. 여기서 도덕의 두 가지 추가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특정 사회의 도덕 안에서도 의무부과적인 도덕적 의무들과 책무들의 구조 및 그것들을 규정하는 비교적 명확한 규칙들과 나란히, 일정한 도덕적 이상들(ideals)이 존재한다. 이것들의 실현은 책무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칭찬받을 만한 성취로 받아들여진다. 영웅(hero)과 성인(saint)은 자기 책무보다 더 많은 것(more)을 하는 사람들의 극단적 유형들이다. 그들이 하는 것은 의무나 책무처럼 그들에게 요구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며, 그것을 하지 못하는 것은 그른(wrong) 것으로 여겨지거나 비난(censure)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성인이나 영웅보다 더 소박한 척도에는, 용감함(bravery), 자선(charity), 선의(benevolence), 인내(patience), 정절(chastity)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드러내는 도덕적 미덕들(moral virtues) 때문에 한 사회에서 칭찬받을 자격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사회적으로 인정된 이상들과 미덕들, 그리고 사회적 의무와 책무의 일차적 의무부과 형식들 사이의 연결은 상당히 명확하다. 많은 도덕적 미덕들은, 책무가 요구하는 제한된 범위를 넘어, 책무가 요구하는 종류의 타인들의 이익에 대한 관심 또는 개인적 이익의 희생을 계속 밀고 나갈 능력과 성향(disposition)으로 이루어진 성질들이다. 선의(benevolence)와 자선(charity)이 이것의 예이다. 절제(temperance), 인내(patience), 용감함(bravery), 양심성(conscientiousness) 같은 다른 도덕적 미덕들은 (p. 183) 어떤 의미에서는 보조적(ancillary)이다. 그것들은 특별한 유혹이나 위험에 직면하여 책무에 대한 예외적 헌신이나 실질적 도덕 이상들의 추구에서 드러나는 성격의 성질들이다.

도덕의 더 먼 범위들은 우리를, 서로 다른 방식들로, 특정 사회 집단들에서 인정되는 의무들과 이상들의 경계 너머로, 사회 자체에 대한 도덕적 비판에서 사용되는 원칙들과 이상들로 이끈다. 그러나 여기서도 도덕의 원초적 사회 형식과의 중요한 연결들은 남아 있다. 우리 자신의 사회나 다른 어떤 사회의 수용된 도덕을 검토하게 될 때, 우리가 비판할 많은 것을 발견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그것은 현재 이용 가능한 지식에 비추어 불필요하게 억압적이고, 잔혹하고, 미신적이고, 계몽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것은 인간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는데, 특히 종교의 논의와 실천에서 또는 인간 삶의 서로 다른 형식들에 대한 실험에서 그러할 수 있으며, 그로써 타인들에게 확보되는 혜택들이 무시할 만한 것에 그치는 경우에도 그렇다. 무엇보다도, 주어진 사회의 도덕은 해악으로부터의 보호들을 자기 구성원들에게만, 또는 심지어 일정한 부류들에게만 확장하여, 노예 또는 헬롯 계급을 그 주인들의 변덕에 내맡길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비판 속에는, 설령 그것이 거부될 수 있다 하더라도, 확실히 ‘도덕적’ 비판으로 인정될 것이며, 수용된 도덕을 포함하는 사회의 장치들(arrangements)이 두 형식적 조건, 곧 합리성(rationality)과 일반성(generality)을 충족해야 한다는 전제가 암묵적으로 들어 있다. 따라서 그러한 비판에는 첫째, 사회적 장치들이 잘못된 것으로 입증될 수 있는 믿음들에 기초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둘째, 도덕이 그 요구하는 행위들과 자제들을 통해 특징적으로 제공하는 해악으로부터의 보호들은 그러한 제한들을 스스로 준수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모든 인간에게 적어도 확장되어야 한다는 점이 함의된다. 그러므로 자유(liberty), 우애(fraternity), 평등(equality), 행복 추구(the pursuit of happiness)와 같은 표어들에 담긴 사회에 대한 도덕적 비판은, 모든 실제 사회 도덕들에서 이미 인정된, 비록 어쩌면 부적절한 정도로만 인정된, 어떤 가치 또는 가치들의 결합의 이름으로, 또는 합리성과 일반성이라는 두 요구를 충족하도록 정제되고 확장된 그것들의 한 판본의 이름으로, 개혁을 요청한다는 사실에서 그 도덕적 성격을 끌어낸다.

물론 자유나 평등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수용된 도덕 또는 다른 사회적 장치들에 대한 비판이 그 자체로 (p. 184) 도덕적(moral) 비판으로 인정된다는 사실로부터, 다른 가치들의 이름으로 그것을 거부하는 것 또한 도덕적일 수 없다는 결론이 따라나오는 것은 아니다. 자유 제한에 대한 비난은, 자유를 사회적 또는 경제적 평등이나 안전에 희생하는 것 자체가 정당화되었다는 주장(claim)에 부딪힐 수 있다. 서로 다른 도덕적 가치들에 부여되는 무게나 강조의 그러한 차이들은 화해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 그것들은 사회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이상적 구상들(conceptions)에 이를 수 있고, 대립하는 정당들의 도덕적 기초를 형성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위대한 정당화들(justifications) 가운데 하나는 그러한 대안들 사이의 실험과 수정 가능한 선택을 허용한다는 점이다.

끝으로, 주어진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의무들과 이상들을 넘어서는 도덕의 모든 확장이 사회 비판의 형식을 취할 필요는 없다. 도덕에는 개인적 측면이 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개인이, 타인들과 공유할 필요도 없고, 타인들에 대한 비판의 원천으로, 더구나 사회 전체에 대한 비판의 원천으로 간주할 필요도 없는 이상들을 인정하는 데서 드러난다. 삶들은 영웅적, 낭만적, 미적, 학문적 이상들의 추구에 대한 헌신에 의해, 또는 덜 유쾌하게는 육체의 고행(mortification of the flesh)에 대한 헌신에 의해 지배될 수 있다. 여기서도 우리가 도덕을 말한다면, 개인들이 이렇게 추구하는 가치들이 그들 자신의 사회의 도덕 안에서 인정되는 가치들 가운데 일부와 적어도 유비적이기 때문이라고 논변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유비는 분명 내용의 유비가 아니라 형식과 기능의 유비이다. 그러한 이상들은 개인들의 삶에서 도덕이 사회에서 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최고로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어, 그 추구가 다른 이익들이나 욕망들이 희생되어야 할 책무로 느껴진다. 전환(conversions)은 가능하지만 그러한 이상들이 의도적 선택에 의해 채택되거나 변경되거나 제거될 수 있다는 관념(notion)은 공상적(chimerical)이다. 끝으로 그러한 이상들로부터의 일탈들은 사회적 도덕이 일차적으로 호소하는 바로 그 양심, 죄책감, 후회에 의해 ‘처벌’된다.

제8장 주석

157쪽. 정의(Justice)는 도덕(morality)의 구별되는 한 부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 제5권 1–3장에서, 정의는 인간들 사이의 균형(balance)이나 비례(proportion)를 유지하거나 회복하는 것에 특수하게 관련된 것으로 설명한다. 정의 관념(idea of justice)에 대한 현대의 가장 뛰어난 설명은 시즈윅(Sidgwick)의 『윤리학의 방법(The Method of Ethics)』 제6장, 페를만(Perelman)의 『정의에 대하여(De la Justice)』(1945), 그리고 이를 따른 로스(Ross)의 『법과 정의(On Law and Justice)』 제12장에 있다.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논의는 델 베키오(Del Vecchio)의 『정의(Justice)』에 있으며, 이는 하트(Hart)가 『철학(Philosophy)』 제28호(1953)에서 서평했다.

161쪽. 법 적용에서의 정의. 이 정의의 측면만을 정의 전체로 환원하려는 유혹은, 홉스(Hobbes)가 『리바이어던(Leviathan)』 제30장에서 “어떠한 법도 부정의할 수 없다(no law can be unjust)”라고 말한 데 대한 설명일 수 있다. 오스틴(Austin)은 『법의 영역(The Province of Jurisprudence Determined)』 제6강 260쪽 각주에서 “‘정의롭다(just)’는 말은 상대적 의미를 가지며, 그것은 발화자가 비교 기준으로 가정하는 특정한 법에 대한 관계에서 말해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법은 그것이 실정 도덕(positive morality)이나 신의 법(law of God)에 의해 판단된다면 도덕적으로 부정의할 수 있다. 오스틴은 홉스가 단지 법이 법적으로(legally) 부정의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라 보았다.

162쪽. 정의와 평등(Equality). ‘인간은 일응(prima facie) 같게 대우되어야 한다’는 원칙의 지위와 정의 관념(idea of justice)과의 관계에 대한 유익한 논의로는, 벤(Benn)과 피터스(Peters)의 『사회 원칙과 민주 국가(Social Principles and the Democratic State)』 제5장 ‘정의와 평등(Justice and Equality)’, 롤스(Rawls)의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 (Philosophical Review, 1958), 라파엘(Raphael)의 “평등과 형평(Equality and Equity)” (Philosophy, 제21권, 1946), 그리고 “정의와 자유(Justice and Liberty)” (Proceedings of the Aristotelian Society, 제51권, 1951–2)가 있다.

162쪽.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제. 『정치학(Politics)』 제1권 제2장 3–22절 참조. 그는 어떤 이들은 ‘자연적으로(by nature)’ 노예가 아니며, 그들에게 노예제는 정의롭지도 유익하지도 않다고 보았다.

163쪽. 정의와 보상(compensation).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와 명확히 구별되며, 위 저서 제5권 제4장에서 논의된다. 그는 정의 관념(idea of justice)의 모든 적용에서 유지되거나 회복되어야 할 ‘정의로운’ 비례가 있다는 통일 원칙을 강조하였다. 해설서로는 잭슨(H. Jackson)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5권』(1879) 참조.

164쪽. 사생활 침해에 대한 법적 보상. 사생활권(the right to privacy)을 법이 인정해야 하며, 보통법(common law)의 원칙들이 그 인정(recognition)을 요구한다는 논증은, 워런(Warren)과 브랜다이스(Brandeis)의 “사생활의 권리(The Right to Privacy)” (Harvard Law Review, 제4권, 1890)와 Roberson v. Rochester Folding Box Co. (1902, 171 NY 538) 사건에서의 그레이 판사(Gray J.)의 반대 의견에서 확인된다. 영국의 불법행위법(tort law)은 사생활 자체를 보호하지는 않지만, 미국에서는 이제 광범위하게 보호된다. 영국법에서는 Tolley v. J. S. Fry and Sons Ltd. (1931, AC 333) 참조.

166쪽. 개인 간 정의와 더 넓은 사회적 이익 간의 충돌. 불법행위법(tort)에서의 엄격책임(strict liability)과 대리책임(vicarious liability)에 대한 논의는 프로서(Prosser)의 『불법행위론(Torts)』 제10장 및 제11장, 프리드먼(Friedmann)의 『변화하는 사회 속의 법(Law in a Changing Society)』 제5장에서 다루어진다. 형사법에서 엄격책임의 정당화에 대해서는 글랜빌 윌리엄스(Glanville Williams)의 『형사법(The Criminal Law)』 제7장, 프리드먼 위 저서 제6장 참조.

166쪽. 정의와 ‘공동선(common good)’. 공동선 추구를 정의롭게 행위하는 것 또는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의 이익에 대한 공정한 배려와 동일시하는 논의는, 벤과 피터스의 『사회 원칙과 민주 국가』 제13장에서 다루어진다. 이처럼 ‘공동선’을 정의와 동일시하는 입장은 보편적으로 수용되지는 않는다. 시즈윅의 『윤리학의 방법』 제3장 참조.

167쪽. 도덕적 의무(Moral Obligation). 사회적 도덕(social morality) 내의 의무들(obligations)과 책무들(duties)을 도덕적 이상들(moral ideals) 및 개인적 도덕(personal morality)과 구분해야 한다는 논의는, 엄슨(Urmson)의 “성인과 영웅(Saints and Heroes)” (Essays on Moral Philosophy, 멜든(Melden) 편), 화이틀리(Whiteley)의 “도덕 정의하기(On Defining ‘Morality’)” (Analysis, 제20권, 1960), 스트로슨(Strawson)의 “사회 도덕과 개인 이상(Social Morality and Individual Ideal)” (Philosophy, 1961), 브래들리(Bradley)의 『윤리학 연구(Ethical Studies)』 제5장 및 제6장에서 확인된다.

169쪽. 사회 집단의 도덕. 오스틴(Austin)은 『법의 영역(The Province of Jurisprudence Determined)』에서 ‘실정 도덕(positive morality)’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하나의 사회에서 실제로 관찰되는 도덕을 ‘신의 법(the law of God)’과 구분하였다. 후자는 오스틴에게 있어 실정 도덕과 실정법을 판단하는 궁극적 기준들(ultimate standards)이었다. 이는 사회적 도덕과 그것을 넘어서 이를 비판하는 도덕 원칙들 사이의 중요한 구별을 지목한다. 오스틴의 실정 도덕은 실정법 외의 모든 사회 규칙을 포함하며, 예절, 게임, 클럽, 국제법 등도 포함된다. 이러한 ‘도덕’이라는 용어의 넓은 사용은 형식과 사회적 기능의 너무 많은 중요한 구별들을 흐린다. 제10장 제4절 참조.

172쪽. 필수 규칙들(Essential Rules). 폭력 사용을 제한하고 재산(property)과 약속(promises)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는 규칙들이 실정법과 사회적 도덕 모두의 기저에 있는 자연법(Natural Law)의 ‘최소한의 내용(minimum content)’을 형성한다는 논의는 제9장 제2절 참조.

172–173쪽. 법과 외부 행위. 본문에서 비판된, 법은 외부 행위를 요구하지만 도덕은 그렇지 않다는 견해는, 칸트(Kant)의 법적 법칙(juridical laws)과 윤리적 법칙(ethical laws) 사이의 구분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대한 고전적 설명은 헤이스티(Hastie) 편 『칸트의 법철학(Kant’s Philosophy of Law)』(1887) 서론 14쪽 및 20–24쪽 참조. 현대적 재진술은 칸토로비츠(Kantorowicz)의 『법의 정의(The Definition of Law)』 43–51쪽에 있으며, 이는 휴즈(Hughes)의 “법체계의 존재(The Existence of a Legal System)” (New York University Law Review, 제35권, 1960)에서 비판된다.

178쪽. mens rea와 객관적 기준들. 홈즈(Holmes)의 『보통법(The Common Law)』 제11강, 홀(Hall)의 『형법 원칙(Principles of Criminal Law)』 제5장 및 제6장, 하트(Hart)의 “법적 책임과 면책 사유들(Legal Responsibility and Excuses)” (Determinism and Freedom, 후크(Hook) 편) 참조.

179쪽. 정당화(Justification)와 면책 사유(Excuse). 살해(homicide)에 관한 법 이론에서의 이 구분은 케니(Kenny)의 『형법 개요(Outlines of Criminal Law)』(24판) 109–116쪽 참조. 일반 도덕에서의 중요성은 오스틴(Austin)의 “면책 사유들을 위한 변론(A Plea for Excuses)” (Proceedings of the Aristotelian Society, 제57권, 1956–57), 하트의 “처벌의 원칙에 대한 서설(Prolegomenon to the Principles of Punishment)” (PAS, 제60권, 1959–60) 12쪽에서 논의됨. 유사한 구별은 벤담(Bentham)의 『법 일반론(Of Laws in General)』 121–122쪽의 ‘면제(exemption)’와 ‘면책(exculpation)’ 참조.

181쪽. 도덕, 인간의 필요, 이해관계. 어떤 규칙을 도덕 규칙(moral rule)이라고 부르는 기준은 그것이 영향을 받는 자들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성적이고 공정한 고려(reasoned and impartial consideration)의 산물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벤과 피터스의 『사회 원칙과 민주 국가』 제2장 참조. 대조적으로 데블린(Devlin)의 『도덕의 집행(The Enforcement of Morals)』(1959) 참조.

제8장 제3판 주석

157–160쪽. 정의의 원칙들(Principles of Justice). 하트(Hart)에게서 중요한 영향을 받은 존 롤스(John Rawls)는 정의(Justice)의 사항적 범위(subject matter)를 『정의론(A Theory of Justice)』(개정판, 하버드대학출판부, 1999) 제1장에서, 특히 6–10쪽에서 다룬다. 정의의 원칙들, 특히 분배적 성격(distributive character)에 주목한 유용한 개관으로는 데이비드 밀러(David Miller)의 『사회정의(Social Justice)』(옥스퍼드대학출판부, 1976) 제1장이 있다.

159–160쪽. ‘같은 사례들은 같게 취급하라(Treat like cases alike)’. 하트가 이것이 일종의 정의라고 시사한 점은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 논의는 데이비드 라이언스(David Lyons)의 “형식적 정의에 대하여(On Formal Justice)” (Cornell Law Review, 제58권, 1972, 833쪽), 매튜 크레이머(Matthew Kramer)의 “지속성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Constancy)” (Law and Philosophy, 제16권, 1997, 561쪽), 존 가드너(John Gardner)의 『신념의 도약으로서의 법(Law as a Leap of Faith)』 제10장 “정의의 미덕과 법의 성격”에서 다루어진다. 드워킨(Dworkin)은 ‘같은 사례들을 같게 취급한다’는 원칙을 단순한 일관성(consistency)이 아니라 ‘통합성(integrity)’이라는 이상(ideal)과 연결시킨다. 그는 “통합성은 공동체의 공적 기준들(public standards)이, 가능한 한, 정의(Justice)와 공정성(Fairness)을 올바른 관계 속에 놓는 단일하고 정합적인 체계를 표현하도록 만들어지고 또한 그렇게 보일 것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Law’s Empire, 219쪽). 이에 대한 회의적 입장은 드니즈 레옴(Denise Réaume)의 “통합성은 미덕인가? 드워킨의 법적 의무 이론(Is Integrity a Virtue? Dworkin’s Theory of Legal Obligation)” (University of Toronto Law Journal, 제39권, 1989, 380쪽), 조셉 라즈(Joseph Raz)의 『공적 영역에서의 윤리(Ethics in the Public Domain)』 319–325쪽을 참조하라.

161–164쪽.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와 보상적 정의(Compensatory Justice). 정의의 ‘형태들(forms)’에 대한 전통적 분류와 그들 사이의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특히 분배적 정의와 교정적 정의(corrective justice)에 관한 논의는 줄스 콜먼(Jules Coleman)의 『위험과 잘못(Risks and Wrongs)』(개정판, 옥스퍼드대학출판부, 1992), 스티븐 페리(Stephen Perry)의 “교정적 정의와 분배적 정의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On the Relationship between Corrective and Distributive Justice)” (제러미 호더(Jeremy Horder) 편, 『옥스퍼드 법철학 논문집』 제4집, 2000), 존 피니스(John Finnis)의 『자연법과 자연권(Natural Law and Natural Rights)』 173–184쪽, 존 가드너의 “불법행위법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제1부: 교정적 정의의 위치” (Law and Philosophy, 제30권, 2011, 1쪽)를 참조하라.

166–167쪽. 정의와 다른 가치들. 존 롤스는 『정의론』(개정판) 3–4쪽에서 정의는 사회 제도들(social institutions)의 제1 미덕(first virtue)이라 주장한다. 이 견해는 존 가드너의 『신념의 도약으로서의 법』 제10장 “정의의 미덕과 법의 성격”, 제러미 월드론(Jeremy Waldron)의 “정의의 우위성(The Primacy of Justice)” (Legal Theory, 제9권, 2003, 269쪽)에서 다루어진다.

169–170쪽. 관행적 도덕(Conventional Morality). 하트는 ‘실정 도덕(positive morality)’과 ‘비판적 도덕(critical morality)’을 구별한다. 실정 도덕, 또는 관습적(customary) 도덕, 또는 관행적 도덕(conventional morality)은 특정 사회 집단에 의해 실제로 수용되고 있는 도덕이다. 반면, 비판적 도덕은 건전한, 또는 올바른 도덕(sound, or correct morality), 즉 그 사회가 수용해야 마땅한(ought to accept) 도덕이다. 이는 하트의 『법, 자유, 도덕(Law, Liberty, and Morality)』(스탠퍼드대학출판부, 1963) 17–24쪽에서 설명된다. 드워킨은, 사회적으로 수용된 모든 행위에 대한 태도들이 도덕으로 간주될 수는 없으며, 일부는 단지 혐오(hatreds), 공포(phobias) 등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권리를 진지하게 다루기(Taking Rights Seriously)』 248–255쪽에서 논의된다. W. J. 왈루초우(W. J. Waluchow)는, 단순한 관행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제도들에 의해 전제되는 실정적 ‘공동체 헌법 도덕(community constitutional morality)’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그의 『판례법적 사법심사 이론(A Common Law Theory of Judicial Review: The Living Tree)』(케임브리지대학출판부, 2007)에서 전개된다.

183–184쪽. 사회에 대한 도덕적 비판(Moral Criticism of Society). 관련 논의는 패트릭 데블린(Patrick Devlin)의 『도덕의 집행(The Enforcement of Morals)』(옥스퍼드대학출판부, 1965), 하트의 『법, 자유, 도덕』, 드워킨의 『권리를 진지하게 다루기』 제10장, 로버트 P. 조지(Robert P. George)의 『도덕적 인간 만들기(Making Men Moral): 시민적 자유와 공적 도덕(Civil Liberties and Public Morality)』(옥스퍼드대학출판부, 1993) 제2장을 참조하라.

  1. De Civitate Dei, IV, 4. 

  2. 아래 173쪽 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