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법들의 다양상

현대의 법체계, 예컨대 영국법에서 발견되는 여러 종류의 법들의 다양상(varieties)을 앞 장에서 구성한 강제적 명령들(coercive orders)이라는 단순한 모델과 비교해보면, 무수한 이의들이 즉시 떠오른다. 모든 법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하거나 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유언장을 작성하거나 계약을 체결하거나 혼인을 성립시킬 권한들을 사적 개인들에게 부여하는 법들이나, 공무담당자들에게 권한들을 부여하는 법들, 예컨대 판사에게 사건들을 재판할 권한을, 장관에게 규칙들을 제정할 권한을, 카운티 의회에게 조례들을 제정할 권한을 부여하는 법들을 그렇게 분류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 아닐까? 모든 법들이 제정된(enacted) 것도 아니며, 그것들 모두가 우리 모델의 일반 명령들에서처럼 어떤 사람의 욕구(desire)를 표현한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법체계에서 진정한, 비록 제한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관습에 대해서는 이는 참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법들은, 그것들이 의도적으로 제정된 제정법들(statutes)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오직 타인들에게만 내려진 명령들이어야 하는가? 제정법들이 종종 입법자들 자신을 구속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제정된 법들이 법들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입법자의 실제 욕구들(desires), 의도들(intentions), 또는 바람들(wishes)을 정말로 표현해야 하는가? 만약 적법하게 통과된 제정물(enactment)이 (영국의 재정법(Finance Act) 조항 중 많은 경우가 틀림없이 그렇듯) 그것에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이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면 법이 아니게 되는가?

이러한 이의들은 가능한 수많은 이의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 중 일부이다. 분명히 원래의 단순한 모델에 일정한 수정을 가해야만 이러한 이의들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모든 이의들을 수용한 뒤에는 위협으로 뒷받침된 일반 명령들이라는 관념(notion)이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되어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언급한 이의들은 세 가지 주요 부류로 나뉜다. 일부는 법들의 내용(content)에 관한 것이고, 다른 일부는 그것들의 기원 방식(mode of origin)에, 또 다른 일부는 그것들의 적용 범위(range of application)에 관한 것이다. 모든 법체계는—어쨌든 겉보기에는(seem)—이 세 가지 사항 중 하나 이상에서 우리가 설정한 일반 명령들의 모델에서 벗어나는 법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장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이러한 세 가지 유형의 이의를 각각 따로 고찰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는 이보다 더 근본적인 비판, (p. 27) 즉 내용, 기원 방식, 적용 범위에 근거한(on the score of) 이러한 이의들과는 별개로, 이 모델이 기초하고 있는, 습관적으로 복종받는 최고이고 독립적인 주권자라는 전체 구상(conception)이 실제의 어떤 법체계에서도 그에 대응하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을 다루기로 하겠다.

1. 법의 내용

형사법은 우리가 복종하거나 불복종하는 대상이며, 그 규칙들이 요구하는 바는 ‘책무(duty)’라고 말해진다. 우리가 불복종하면 우리는 법을 ‘어긴(break)’다고 말해지고, 우리가 한 것은 법적으로 ‘그른(wrong)’ 것, ‘책무 위반(breach of duty)’, 혹은 ‘위반행위(offence)’라고 말해진다. 형사 제정법(criminal statute)이 수행하는 사회적 기능은 특정 행위 유형들을, 그 법이 적용되는 자들의 바람과 무관하게, 피해야 하거나 해야 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규정하는 데 있다. 형사법의 위반들(breaches) 또는 침해들(violations)에 법이 부착하는 형벌 또는 ‘제재(sanction)’는 (형벌이 다른 목적을 지닐 수도 있지만) 이러한 활동들을 삼가도록 하는 하나의 동기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이 모든 점에서 형사법과 그 제재들, 그리고 우리 모델의 위협으로 뒷받침된 일반 명령들 사이에는 적어도 강한 유비가 있다. 이러한 일반 명령들과 불법행위법(tort law) 사이에도 (많은 중요한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유비가 존재하는데, 후자의 일차적 목적은 타인의 행위 결과로 입은 손해(harm)에 대해 개인들에게 배상을 제공하는 데 있다. 여기서도 어떤 행위 유형들이 소송상 청구 가능한 그른 행위들(actionable wrongs)을 구성하는지를 결정하는 규칙들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바람과 무관하게, 그러한 행위를 삼갈 ‘책무들(duties)’(혹은 드물게는 ‘의무들(obligations)’)을 부과하는 것으로 말해진다. 이러한 행위 자체는 ‘책무 위반(breach of duty)’이라고 불리며, 배상이나 기타 법적 구제수단은 ‘제재(sanction)’라고 불린다. 그러나 법의 중요한 부류들 중에는 위협으로 뒷받침된 명령들과의 이러한 유비가 전혀 성립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는데, 그것들은 전혀 다른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유효한 계약이나 유언, 혼인이 이루어지는 방식들을 규정하는 법규칙들은,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특정한 방식으로 행위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법들은 책무들이나 의무들을 부과하지 않는다. 대신 개인들이 특정 절차에 따라 그리고 일정한 (p. 28) 조건 아래에서 법의 강제적 틀 안에 권리들과 책무들의 구조를 창출할 수 있는 법적 권한들(legal powers)을 그들에게 부여함으로써, 그들의 바람들을 실현할 수 있는 편의수단들(facilities)을 제공한다.

계약, 유언, 혼인 등을 통해 개인이 타인과의 법적 관계를 빚어낼 수 있도록 이렇게 개인들에게 부여되는 권한은 법이 사회생활에 기여한 가장 위대한 기여들 중 하나이며, 모든 법을 위협으로 뒷받침된 명령들의 문제로 표상함으로써 가려져 온 법의 한 특징이다. 이러한 권한을 부여하는 법들과 형사 제정법 사이의 근본적 기능 차이는 우리가 이 부류의 법들에 대해 일상적으로 말하는 많은 방식들에도 반영되어 있다. 우리는 유언장을 작성할 때 1837년 유언법 제9조(s. 9 of the Wills Act, 1837)의 증인 수에 관한 규정을 ‘준수할(comply)’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준수하지 않을 경우, 우리가 작성한 문서는 권리들과 책무들을 창출하는 ‘유효한(valid)’ 유언이 아니라 법적 ‘효력(force)’이나 ‘효과(effect)’를 갖지 않는 ‘무효(nullity)’가 된다. 그러나 그것이 무효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제정법 규정(statutory provision)을 준수하지 못한 것은 어떤 의무나 책무의 ‘위반(breach)’이나 ‘침해(violation)’도 아니며, 또한 ‘위반행위(offence)’도 아니고, 이를 그런 용어들로 생각하는 것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사적 개인에게 법적 권한들을 부여하는 여러 법규칙들을 들여다보면, 그것들 자체도 서로 구별 가능한 종류들로 나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유언장을 작성하거나 계약을 체결할 권한 배후에는, 그 권한을 행사하는 자들이 보유해야 하는 (예컨대 성년일 것, 정신적으로 온전할 것 등과 같은) 행위능력(capacity) 또는 최소한의 개인적 자격요건(qualification)에 관한 규칙들이 있다. 다른 규칙들은 그 권한이 행사되어야 하는 방식과 형식을 상세히 규정하고, 유언이나 계약이 구두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또는 서면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서면이라면 그 작성(execution)과 증인인증(attestation)의 형식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확정한다. 또 다른 규칙들은 개인들이 그러한 법-내-행위들(acts-in-the-law)에 의해 창출할 수 있는 권리들과 책무들의 구조가 가지는 다양상(variety), 또는 그 최대·최소 지속기간을 한정한다. 이러한 규칙들의 예로는 계약과 관련한 공서양속 규칙들이나, 유언·재산처분(settlements)에서의 축적금지 규칙들이 있다.

이후 우리는 “당신이 이것을 하고자 한다면, 이렇게 하라”고 말하며 편의수단들 또는 권한들을 제공하는 법들을,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렇게 하라”고 말하는, 위협으로 뒷받침된 명령들과 같은 형사법들과 동화시키려는 법리학자들의 시도들을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방금 논의한 권한들은 사적 성격을 갖는 데 반해, 공적(public) 또는 공무담당적(official) 성격의 법적 권한들을 부여하는 또 하나의 법 부류를 살펴보겠다. (p. 29) 그 예들은 정부가 관행적으로, 비록 모호하게나마, 사법·입법·행정으로 나누어지는 세 부문 모두에서 발견된다.

우선, 법원의 작동 배후에 놓인 법들을 고려해 보자. 법원의 경우 어떤 규칙들은 판사의 관할권의 사항적 범위와 내용(subject-matter and content)을 특정하거나, 우리가 말하듯이, 그에게 특정 유형의 사건들을 ‘재판할 권한(power to try)’을 부여한다. 다른 규칙들은 사법 직위의 임명 방식, 자격요건, 임기를 특정한다. 또 다른 규칙들은 올바른 사법적 행태(correct judicial behaviour)에 관한 준칙들을 세우고 법정에서 따라야 할 절차를 정한다. 일종의 사법 법전(judicial code)을 형성하는 이러한 규칙들의 예는 1959년 카운티 법원법(County Courts Act, 1959), 1907년 형사항소법(Court of Criminal Appeal Act, 1907), 또는 미국 연방법전 제28편(Title 28 of the United States Code)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제정법들(statutes)에서 법원의 구성과 정상적 작동을 위해 마련된 규정들(provisions)의 다양상을 관찰하는 것은 유익하다. 겉보기에는 이들 중 극히 일부만이 판사에게 어떤 행위를 하거나 하지 말라고 내려진 명령처럼 보인다. 물론 법이 특별한 규칙들을 통해, 판사가 관할권을 초과하거나 재정적 이해관계가 있는 사건을 심리하는 것을 제재적-불이익(penalty) 아래 금지할 수도 있음은 당연하지만, 그러한 법적 책무들을 부과하는 이 규칙들은 판사에게 사법적 권한들을 부여하고 그의 관할권을 규정하는 규칙들에 부가되는 것일 뿐이다. 그러한 권한들을 부여하는 규칙들의 관심사는 판사로 하여금 부적절한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억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법원의 결정들이 유효하게 되는 조건들과 한계들을 규정하는 데 있다.

이어서, 법원의 관할권 범위를 특정하는 전형적인 규정 하나를 간략히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가장 단순한 예로, 개정된 1959년 카운티 법원법에 따라 토지 반환 소송에 대한 관할권이 카운티 법원에 부여된 조항을 들 수 있다. 이 조항의 언어는 ‘명령’의 언어와는 매우 동떨어져 있으며 다음과 같다:

카운티 법원은, 문제된 토지의 연간 순과세가액이 100파운드를 초과하지 않을 경우, 해당 토지 반환 소송을 심리하고 판결할 수 있는 관할권을 갖는다.1

만약 카운티 법원 판사(county court judge)가 연간 가치가 £100을 초과하는 토지의 회복을 구하는 사건을 심리함으로써 (p. 30) 자신의 관할권(jurisdiction)을 넘어서는 경우, 그리고 그러한 토지에 관하여 명령을 내린다 하더라도, 그 판사나 소송 당사자 어느 쪽도 위반행위(offence)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상황은, 어떤 사인(private person)이 어떤 법적 권한(legal power)의 유효한 행사를 위해 필수적인 조건을 준수하지 못하여 ‘무효(nullity)’인 무엇인가를 하는 경우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예컨대 유언을 하려는 자(would-be testator)가 유언장에 서명하지 않거나 두 명의 증인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그가 작성한 것은 어떠한 법적 지위나 효과(effect)도 갖지 않는다. 그러나 법원의 명령은, 그것이 명백히 그 법원이 내릴 관할권 밖의 명령인 경우에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법원이 법적으로 내려서는 안 되었던 명령이라 하더라도 상급법원(superior court)이 그 유효하지 않음(invalidity)을 확인할 때까지는 법원의 결정이 법적 권위(legal authority)를 갖는 것이 공공질서(public order)의 이익상 명백히 필요하다. 따라서 관할권 초과로 내려진 명령으로서 항소심에서 취소되기(set aside) 전까지는, 그 명령은 당사자 사이에서 법적으로 효력 있는(effective) 명령으로 존속하며 집행된다. 다만 그것은 하나의 법적 결함(legal defect)을 가진다. 즉 관할권 결여 때문에 항소심에서 취소되거나(set aside) ‘파기(quashed)’될 수 있다(is liable). 여기서, 영국에서 통상 하급법원의 명령에 대해 상급법원이 내리는 ‘번복(reversal)’과, 관할권 결여를 이유로 한 명령의 ‘파기(quashing)’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명령이 번복되는(reversed) 경우, 이는 하급법원이 해당 사건에 적용된 법이나 사실에 관하여 말한 것이 그르다고(wrong)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할권 결여로 파기되는(quashed) 하급법원의 명령은 이 두 측면 모두에서 흠잡을 데가 없을 수도 있다. 문제는 하급법원 판사가 말하거나 명령한 내용(what)이 그른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가(his) 말하거나 명령했다는 것 자체에 있다. 그는 다른 법원들은 그러한 권한을 부여받았을 수 있더라도 자신에게는 법적으로 권한이 부여되지 않은 일을 한다고 표방한(purported to do) 것이다. 공공질서의 이익 때문에 관할권을 초과하여 내려진 결정이라도 상급법원에 의해 파기되기 전까지는 존속한다는(stand) 복잡한 사정을 제외하면, 관할권 규칙에 부합하거나 부합하지 못하는 것(conformity and failure to conform to rules of jurisdiction)은 사인이 법적 권한을 유효하게 행사하기 위한 조건을 규정하는 규칙에 부합하거나 부합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경우에서 규칙에 부합하는 행위(conforming action)와 규칙 사이의 관계는, 규칙들이 명령(orders)과 유비적인 형사법의 경우에 더 적절한 ‘복종하다(obey)’나 ‘불복종하다(disobey)’라는 말들로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제정법(statute)이 종속된 입법기관에게 입법 권한을 부여하는 경우 역시, 일반 명령에, (p. 31) 왜곡이라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동화될 수 없는 법규칙의 한 유형을 예시한다. 이 경우에도 사적 권한의 행사에서처럼, 입법 권한들을 부여하는 규칙들이 정한 조건들에 부합하는 것은 체스와 같은 게임에서의 ‘수(move)’와 같은 단계에 해당한다. 그것은 체계가 개인들이 달성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규칙들의 관점에서 규정 가능한 귀결들을 가진다. 입법은 법적 권한들의 행사이며, 법적 권리들과 책무들을 창출하는 데 ‘작용적(operative)’이거나 효력 있는(effective) 것이다. 수권 규칙(enabling rule)의 조건들에 부합하지 못할 경우, 행해진 것은 효력이 없게 되고(ineffective), 그래서 이 목적에서는 무효(nullity)가 된다.

입법 권한들의 행사 배후에 놓인 규칙들은 법원의 관할권(jurisdiction) 배후에 놓인 규칙들보다도 훨씬 더 다양하다. 이는 그러한 규칙들이 입법의 여러 상이한 측면들을 위해 마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규칙들은 입법 권한이 행사될 수 있는 사항적 범위(subject-matter)를 특정하고, 다른 규칙들은 입법기관 구성원의 자격요건들이나 동일성(qualifications or identity)을, 또 다른 규칙들은 입법의 방식과 형식(manner and form), 그리고 입법기관이 따라야 할 절차(procedure)를 특정한다. 이는 관련 사항들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예컨대 하급 입법기관이나 규칙제정기관(rule-making body)의 권한들을 부여하고 규정하는 1882년 「지방자치법(Municipal Corporations Act)」와 같은 제정물(enactment)을 잠시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훨씬 더 많은 규칙들이 드러난다. 이러한 규칙들에 부합하지 못한 결과는 항상 동일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적어도 어떤 규칙들에 대해서는 그 규칙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이 입법 권한의 행사로 표방된 것(purported exercise of legislative power)을 무효(nullity)로 만들거나, 하급 법원의 결정과 마찬가지로 유효하지 않다고 선언될 수 있는 상태(liable to be declared invalid)에 이르게 한다. 때로는 요구된 절차가 준수되었음을 증명하는 증명서(certificate)가 내부 절차(internal procedure)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는 법에 의해 확정적인(conclusive) 것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규칙상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가 입법 절차에 참여한 경우, 이를 위반행위(offence)로 만드는 특별한 형사 규칙(criminal rules)에 따라 제재적-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may be liable to a penalty). 그러나 이러한 복잡성들에 의해 부분적으로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입법 권한들을 부여하고 그 행사 방식(manner of exercise)을 규정하는 규칙들과, 적어도 위협으로 뒷받침된 명령들(orders backed by threats)과 닮아 있는 형사법 규칙들 사이에는 근본적인(radical) 차이가 존재한다.

일부 경우에는 이 두 넓은 유형의 규칙을 동화시키는 것이 기괴한 일일 수 있다. 입법기관 앞에 놓인 어떤 법안(a measure)이 요구되는 다수의 투표를 얻었고 그에 따라 적법하게 통과되었다면, 그 법안에 찬성한 투표자들이 다수결 결정을 요구하는 법에 ‘복종한(obeyed)’ 것이 아니고, (p. 32) 반대한 이들 역시 그것에 복종했거나 ‘불복종한(disobeyed)’ 것이 아니다. 그 법안이 필요한 다수에 도달하지 못하여 법이 통과되지 못했다면, 이 역시 물론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규칙들과 같은 규칙들의 기능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차이가, 형사법 규칙과의 관계 속에 있는 행위에 적절한 용어법을 이곳에 사용하는 것을 막는다.

모두가 단일한 단순 유형으로 반드시(must) 환원되어야 한다는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현대 법체계에 포함된 법들의 다양상(varieties)을 포괄하는 완전하고 상세한 분류학(taxonomy)은 아직도 완성되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권한을 부여하는 법들(laws that confer powers)을, 책무를 부과하고 위협으로 뒷받침된 명령들(orders backed by threats)과 유비적인 법들로부터, 매우 거친 표제 아래 구분함으로써 우리는 겨우 출발점에 섰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도의 논의만으로도, 법체계의 고유한 특징들 가운데 일부가 바로 이러한 유형의 규칙들에 의해 사적·공적 법적 권한들의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마련(provision)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독특한 종류의 규칙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회생활에서 가장 친숙한 개념들 가운데 일부를 결여하게 될 것인데, 이는 그러한 개념들이 논리적으로 이러한 규칙들의 존재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위협으로 뒷받침된 명령들과 닮아 있는 명령적(mandatory) 종류의 형사법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범죄들(crimes)이나 위반행위들(offences), 따라서 살인이나 절도도 존재할 수 없듯이, 권한부여 규칙들(power-conferring rules)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매수(buying), 매도(selling), 증여(gifts), 유언(wills), 혼인(marriages)도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후자의 것들은 법원의 명령들(orders of courts)이나 입법기관의 제정물들(enactments of law-making bodies)과 마찬가지로, 모두 법적 권한들의 유효한 행사(valid exercise of legal powers)로서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리학에서의 통일성(uniformity)에 대한 갈망은 강력하다. 그리고 그것이 결코 불명예스러운 것이 아니므로, 위대한 법리학자들이 제시해 온, 그것을 지지하는 두 가지 대안적 논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논증들은 우리가 강조해 온 법들의 다양상들(varieties of law) 사이의 구별이 피상적이거나, 심지어 실재하지 않는 것에 불과하며, ‘궁극적으로(ultimately)’ 위협으로 뒷받침된 명령들(orders backed by threats)이라는 관념(notion)이 형사법 규칙들뿐만 아니라 권한부여 규칙들(rules conferring powers)의 분석에도 충분하다는 점을 보이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법리학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대부분의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이 논증들에도 진리의 요소는 존재한다. 우리가 구별한 두 종류의 법규칙들 사이에는 분명한 유사점들이 있다. 양 경우 모두에서 행위들은 그 규칙들을 참조하여(by reference to the rules) 법적으로 ‘옳은(right)’ 일인지 ‘그른(wrong)’ 일인지로 비판되거나 (p. 33) 평가될 수 있다. 유언의 작성을 규율하는 권한부여 규칙들(power-conferring rules)과, 제재적-불이익(penalty)을 수반하여 폭행을 금지하는 형사법 규칙은 모두 이러한 방식으로 개별 행위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하는 기준들(standards)을 구성한다. 이 정도는 아마 이들 모두를 규칙이라고 말하는 데 이미 함축되어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권한부여 규칙들은, 책무(duty)를 부과하며 그래서 위협으로 뒷받침된 명령들과 일정한 유비를 갖는 규칙들과 다르기는 하지만, 언제나 그러한 규칙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권한부여 규칙들이 부여하는 권한들(powers)이란, 바로 후자와 같은 유형의 일반적 규칙들을 제정하거나, 그러한 권한들이 없었다면 그러한 책무들을 부담하지 않았을 특정 개인들에게 책무들을 부과할 수 있는 권한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부여된 권한이 통상적으로 입법할 권한(power to legislate)이라 불리는 경우에 가장 명백히 드러난다. 그러나 우리가 보게 되겠지만, 다른 법적 권한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다소의 부정확성을 감수한다면, 형사법과 같은 규칙들이 책무들을 부과하는 반면, 권한부여 규칙들은 책무들을 창출하기 위한 처방들(recipes)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재로서의 무효(Nullity as a sanction)

첫 번째 논변은, 두 종류의 규칙의 근본적 동일성을 보이고 둘 모두를 강제적 명령들(coercive orders)로 제시하려는 시도로, 권한 행사에 필수적인 어떤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때 뒤따르는 ‘무효(nullity)’에 초점을 맞춘다. 이 논변에 따르면, 무효란 형사법에 부착된 처벌처럼, 규칙 위반에 대해 법에 의해 부과되는 위협된 해악(threatened evil) 또는 제재(sanction)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그러한 제재가 단지 약간의 불편에 이를 뿐일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바라보도록 요청받는다. 즉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한 약속을 계약상 구속력 있는 것으로 법에 의해 강제하려 하지만, 그 약속이 날인증서 방식(under seal)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자신이 그 약속에 대해 약인(consideration)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서면 약속이 법적으로 무효(nullity)라는 사실을 유감스럽게도 알게 되는 경우이다. 이와 유사하게, 두 명의 증인이 없는 유언장은 효력을 발하지 않는다(inoperative)고 정하는 규칙은, 유언자들(testators)로 하여금 유언법 제9조를 준수하도록 움직이는 것으로, 우리가 수감(imprisonment)을 생각하여 형사법에 복종하도록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라고 요구받는다.

어떤 경우들에서는 무효(nullity)와, 거래가 유효할 것이라는 기대가 좌절되는 데서 비롯되는 실망(disappointment)과 같은 심리적 요인들 사이에 그러한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재(sanction)의 관념(idea)을 무효까지 포함하도록 확장하는 것은 (p. 34) 혼란의 원천이자(그리고 그 징후(sign)이기도 한) 것이다. 이에 대한 몇 가지 사소한 반론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예컨대 많은 경우, 무효는 법적 유효성(legal validity)에 요구되는 어떤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사람에게 ‘해악(evil)’이 아닐 수도 있다. 판사는 자신의 명령의 유효성에 대해 물질적 이해관계를 가지지 않을 수도 있고, 그 유효성 여부에 무관심할 수도 있다. 또한 어떤 당사자가, 자신이 미성년자였거나 특정 계약에 요구되는 서면 각서(memorandum in writing)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을 상대로 제기된 계약이 자신을 구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그가 여기서 ‘위협된 해악(threatened evil)’이나 ‘제재(sanction)’를 인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소한 점들—약간의 기교를 발휘하면 얼마든지 수용될 수 있는 점들—을 떠나서도, 무효는 더 중대한 이유들 때문에, 규칙이 금지하는 활동들을 삼가도록 하는 유인으로서 규칙에 부가된 처벌(punishment)에 동화될 수 없다. 형사법 규칙의 경우에는 두 가지를 식별하고 구분할 수 있다. 규칙이 금지하는 일정한 유형의 행위와, 그 행위를 억제하기 위해 의도된 제재이다. 그러나 계약의 형식(form)에 관한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약속을 사람들이 서로에게 하는 것과 같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활동을 어떻게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는 형사법이 억제하려는 행위와 같은 것이 아니며, 계약의 법적 형식들을 규정하는 법규칙들이 억누르도록 설계된 무엇도 아니다. 그 규칙들은 단지 그러한 행위들에 대해 법적 인정(legal recognition)을 부여하지 않을 뿐이다. 더 나아가, 어떤 입법 조치가 요구되는 다수결을 얻지 못하여 법으로서의 지위(status of a law)를 획득하지 못하는 사실을 제재로 간주하는 것은 더욱 터무니없다. 이를 형사법의 제재에 동화시키는 것은, 경기의 득점 규칙을 골(goal)이나 득점(run)을 제외한 모든 움직임을 제거하기 위해 설계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 만약 그것이 성공한다면, 모든 경기는 끝장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한부여 규칙들(power-conferring rules)을 사람들이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만들기 위해 설계된 것이며, 복종의 동기로서 ‘무효(nullity)’를 추가하는 것으로 이해할 때에만, 그러한 규칙들을 위협으로 뒷받침된 명령들에 동화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효를 형사법상의 위협된 해악이나 제재와 유사한 것으로 생각하는 데 내재한 혼란은 또 다른 방식으로도 드러날 수 있다. 형사법 규칙의 경우에는, 비록 어떠한 처벌이나 다른 해악도 위협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러한 규칙들이 존재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바람직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경우 그것들이 법적(legal) 규칙이 아닐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p. 35) 특정한 행위를 금지하는 규칙과, 그 규칙이 위반될 경우 부과될 제재적-불이익들(penalties)에 관한 규정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으며, 후자가 없이 전자만이 존재한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제재를 제외하면서도(subtract), 그 규칙이 유지하려고 설계된 이해 가능한 행위 기준(standard of behaviour)을 여전히 남겨 둘 수 있다. 그러나 유효한 유언(valid will)을 위한 증인인증(attestation)과 같이 일정한 조건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규칙과, 이른바 ‘무효’라는 제재 사이에서는 이러한 구분을 논리적으로 행할 수 없다. 이 경우 필수적 조건을 준수하지 않았음에도 무효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 규칙 자체는 비법적(non-legal) 규칙으로서조차 제재 없이 존재한다고 이해가능하게 말해질 수 없다. 무효에 관한 규정은 이러한 유형의 규칙 그 자체의 일부(part)이며, 이는 책무들을 부과하는 규칙에 부착된 처벌(punishment)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만약 공을 골대 사이로 넣지 못한 것이 득점하지 못함(not scoring)이라는 ‘무효(nullity)’를 의미하지 않는다면, 득점 규칙(scoring rules)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비판해 온 논변은, 제재 또는 위협된 해악의 의미를 확장하여(widening), 그러한 규칙들을 준수하지 못함(non-compliance)으로 인해 흠이 생긴(vitiated) 법적 거래의 무효까지 포함시킴으로써, 권한부여 규칙들(power-conferring rules)과 강제적 명령들(coercive orders)의 근본적 동일성을 보이려는 시도이다. 반면, 다음에서 살펴볼 두 번째 논변은 전혀 다른, 기실 정반대의 노선을 취한다. 이 논변은 이러한 규칙들이 강제적 명령들의 한 종이라는 점을 보여주려 하기보다는, 아예 그것들에게서 ‘법(law)’의 지위를 부인한다. 그것들을 배제하기 위해 단어 ‘법’의 의미를 좁히는 것이다(narrows). 이 논변은 서로 다른 법리학자들에게서 더 극단적이거나 덜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그 일반적 형식은, 느슨하게 또는 일상적 표현 방식에서 완전한 법규칙들(complete rules of law)이라고 지칭되는 것들이, 실제로는 유일하게 ‘진정한(genuine)’ 법규칙들인 강제적 규칙들(coercive rules)의 불완전한 파편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법들의 파편들로서의 권한부여 규칙들(Power-conferring rules as fragments of laws)

이 논증의 극단적인 형태에서는 형사법의 규칙들조차, 그것들이 흔히 진술되는 문구로 보았을 때, 진정한 법들(genuine laws)이 아니라고 부정하게 된다. 이와 같은 형태로 이 논증을 채택한 인물이 켈젠(Kelsen)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법은 제재(sanction)를 규정하는 일차 규범(primary norm)이다.”2 살인을 금지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p. 36) 살인을 저지른 자에게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제재들을 적용하도록 공무담당자들(officials)에게 지시하는 법만이 있을 뿐이다. 이 관점에서, 일반 시민의 행위를 향도하기 위해 설계된 것으로 통상 생각되는 법의 내용은, 실제로는 그들에게가 아니라 공무담당자들에게 향하여 있는 규칙의 전건 또는 “if-절”에 불과하며, 그 규칙은 특정 조건들이 충족되면 특정 제재들을 적용하라고 공무담당자들에게 명령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모든 진정한 법들은 공무담당자들에게 제재들을 적용하라는 조건적 명령들이다. 그것들은 모두 다음과 같은 형식을 갖는다. “X 종류의 어떤 것이 행해지거나(done) 부작위되거나(omitted) 발생한 경우(happens), 그러면 Y 종류의 제재를 적용하라.”

전건(antecedent) 또는 if-절들을 점점 더 정교하게 확장함으로써, 사적 또는 공적 권한들을 부여하고 그 행사 방식을 규정하는 규칙들을 포함하여 모든 유형의 법규칙들은 이 조건적 형식(conditional form)으로 다시 진술될 수 있다. 따라서 두 명의 증인을 요구하는 유언법의 규정들은, 유언의 규정들을 위반하여 유증금 지급을 거부한 유언집행자(executor)에게 제재들(sanctions)을 적용하도록 법원들에 내리는 서로 다른 많은 지시들(directions)에 공통적으로 포함되는 부분으로 나타난다. 즉 “이러한 규정들을 포함하고 적법하게 증인된 유언이 있는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만(if and only if), 그리고 만약 … 라면(if … then), 그에게 제재들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형식이다. 이와 유사하게, 법원의 관할권(jurisdiction)의 범위를 특정하는 규칙 역시, 법원이 어떠한 제재들을 적용하기에 앞서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들의 공통 부분으로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입법 권한들을 부여하고 입법의 방식과 형식을 규정하는 규칙들(최고 입법부에 관한 헌법의 규정들을 포함하여) 또한, 그 조건들이 다른 조건들과 함께 충족되면 법원이 제정법들(statutes)에 언급된 제재들을 적용하게 되는 일정한 공통 조건들을 특정하는 것으로 재진술되고 제시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이론은 우리에게 실질(substance)을 그것을 가리는 형식들(obscuring forms)로부터 풀어내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우리는 ‘영국 의회 내의 여왕(Queen in Parliament)이 제정하는 것은 법이다’와 같은 헌법적 형식이나, 의회(Congress)의 입법 권한에 관한 미국 헌법의 규정들이, 법원이 제재들을 적용해야 하는 일반적 조건들을 단지 특정할 뿐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형식들은 본질적으로 완결된 규칙들이 아니라 ‘if-절들(if-clauses)’이다. 즉 ‘만약(If) 영국 의회 내의 여왕이 그렇게 제정하였다면 …’ 또는 ‘만약(if) 헌법에 특정된 한계들(limits) 내에서 의회(Congress)가 그렇게 제정하였다면 …’이라는 형식은, 법원이 제재를 적용하거나 특정 유형의 행위를 처벌하도록 하는 방대한 수의 지시들에 공통적으로 포함되는 조건들의 형식인 것이다.

(p. 37) 이는 법을 가리는 통상적 형식들과 표현들의 다양상 배후에 잠재한 법의 참되고 통일적인 성격을 드러낸다고 표방하는, 강력하면서도 흥미로운 이론이다. 그 결함을 검토하기에 앞서, 이러한 극단적 형태에서 이 이론은, 법을 명령들이 불복종될 때 부과될 제재들의 위협으로 뒷받침된 명령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하던 원래의 법 구상(conception)으로부터의 전환을 포함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대신 이제 중심 구상은, 제재들을 적용하도록 공무담당자들에게 내리는 명령들(orders to officials to apply sanctions)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모든 법의 위반(breach)에 대해 제재가 규정되어 있을 필요는 없으며, 오직 모든 ‘진정한(genuine)’ 법이 어떤 제재의 적용을 지시하기만 하면 된다. 따라서 그러한 지시들을 무시하는 공무담당자가 처벌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실제로 많은 법체계에서 그러한 경우는 흔히 존재한다.

이러한 일반 이론은, 앞서 말했듯이,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덜 극단적인 두 형태 가운데 하나를 취할 수 있다. 덜 극단적인 형태에서는, 법을 일반 시민들(ordinary citizens)을 비롯한 이들에게 향한 위협으로 뒷받침된 명령들로 파악하는 원래의 법 구상(conception)(많은 이들이 직관적으로 더 받아들이기 쉬워하는 구상)이, 적어도 상식적 관점에서 공무담당자들(officials)에게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행위를 주된 대상으로 삼는 규칙들에 대해서는 유지된다. 이 보다 온건한 관점에 따르면, 형사법의 규칙들은 그 모습 그대로 법들이며, 다른 완전한 규칙들의 파편들(fragments)로 재구성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이미 위협으로 뒷받침된 명령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경우들에서는 재구성이 필요하다. 사적 개인들에게 법적 권한들을 부여하는 규칙들은, 이 온건한 이론에서도, 더 극단적인 이론에서와 마찬가지로, 실제의 완전한 법들, 즉 위협으로 뒷받침된 명령들의 단순한 파편들에 불과하다. 이 실제의 완전한 법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발견되어야 한다. 법은 누구에게, 그들이 준수하지 않을 경우 제재적-불이익(penalty)을 받게 하면서, 어떤 행위를 하라고 명령하는가? 이 점이 밝혀지면, 1837년 유언법(Wills Act, 1837)의 증인에 관한 규정들과, 개인들에게 권한들을 부여하고 그 유효한 행사 조건들을 규정하는 다른 규칙들은, 궁극적으로 그러한 법적 책무(legal duty)가 발생하는 조건들 가운데 일부를 특정하는 것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그러한 규칙들은 그 결과, 위협으로 뒷받침된 조건부 명령들(conditional orders backed by threats) 또는 책무를 부과하는 규칙들(rules imposing duties)의 전건(antecedent) 혹은 ‘if-절(if-clause)’의 일부로 나타나게 된다. “유언이 유언자(testator)에 의해 서명되고 특정된 방식에 따라 두 명의 증인에 의해 증명된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만(if and only if) (p. 38) 그리고 만약 … 라면(if … then) 그 집행자(executor)(또는 기타 법적 대리인)는 유언의 규정들에 효력을 부여하여야 한다.” 계약 성립(formation of contract)에 관한 규칙들 또한 마찬가지로, 일정한 것들이 사실이거나 일정한 말이나 행위가 있었을 경우(당사자가 성년이고, 날인증서 방식으로 약정하였거나(covenanted under seal) 약인(consideration)을 약속받았을 경우), 계약에 따라 행해져야 할 일들을 하라고 사람들에게 명령하는 규칙들의 단순한 파편들로 나타나게 된다.

(최고 입법부에 관한 헌법의 규정들을 포함하여) 입법 권한들을 부여하는 규칙들을 ‘진정한(real)’ 규칙들의 파편들로 표상하기 위한 재구성은, 이 이론의 보다 극단적인 버전에 관해 앞의 36쪽에서 설명된 것과 유사한 노선을 따라 수행될 수 있다. 유일한 차이는, 보다 온건한 관점에서는 권한부여 규칙들이 제재들의 위협 아래에서 일반 시민에게 어떤 행위를 하라고 명령하는 규칙들의 전건들(antecedents) 또는 if-절들(if-clauses)로서 재현된다는 점이다. 그것들은 (보다 극단적인 이론에서처럼) 공무담당자들에게 제재들을 적용하라고 지시하는 지시들(directions)의 if-절들로만 재현되지는 않는다.

이 이론의 두 가지 버전은 모두, 겉보기에는 서로 구별되는 법규칙의 다양상들(varieties)을 법의 정수(quintessence)를 전달한다고 주장되는 하나의 단일한 형식으로 환원하려고 시도한다. 두 버전 모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제재를 중심적으로 중요한 요소로 만들며, 제재 없는 법이 완전히 생각 가능하다(conceivable)는 것이 입증된다면 둘 다 실패하게 될 것이다. 다만 이러한 일반적 반론은 뒤로 미루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전개할 양 형태에 대한 구체적 비판은, 이 이론들이 모든 법들을 환원시키는 만족스러운 패턴의 통일성(pleasing uniformity of pattern)을 지나치게 큰 대가를 치르고 얻는다는 점이다. 그 대가란 서로 다른 유형의 법규칙들이 수행하는 상이한 사회적 기능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 이론의 두 형태 모두에 해당하지만, 보다 극단적인 형태의 이론이 요구하는 형사법의 재구성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통일성의 대가로서의 왜곡

이러한 재구성이 초래하는 왜곡은 법의 여러 서로 다른 측면들을 조명해 주기 때문에 숙고할 가치가 있다. 사회가 통제될 수 있는 기법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형사법의 특징적인 기법은 규칙들을 통해 특정한 행위 유형들을 사회 구성원 전체 또는 그 안의 특수한 부류들을 위한 향도의 기준들(standards for the guidance)로 지목하는 데 있다. 그 구성원들은 공무담당자들의 도움이나 개입 없이 (p. 39) 규칙들을 이해하고, 그 규칙들이 자신들에게 적용된다는 점을 알아보며(see), 그 규칙들에 부합할(conform to) 것이 기대된다. 법이 어겨지고 이러한 법의 일차적 기능(primary function)이 실패할 때에만 비로소 공무담당자들은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 위협된 제재들(threatened sanctions)을 부과하는 데 관여한다. 교통근무 중인 경찰관과 같이 공무담당자가 운전자에게 내릴 수 있는 개별화된 대면 명령들(individuated face-to-face orders)과 비교할 때, 이러한 기법의 독특성은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규칙들을 발견하고 자신의 행위를 그 규칙들에 부합시키도록 맡겨진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들은 규칙에 부가된 제재가 규칙 부합(conformity)을 위한 동기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규칙들을 스스로 자신에게 ‘적용한다(apply)’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불복종의 경우 법원이 제재들을 부과하도록 요구하는 규칙들에만 집중하거나 이를 일차적인 것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그러한 규칙들이 실제로 기능하는 고유한 방식을 은폐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후자의 규칙들은 체계의 일차적 목적(primary purpose)이 붕괴되거나 실패하는 경우에 대한 마련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기실 필수불가결할 수는 있으나, 보조적인(ancillary) 성격을 지닌다.

형사법의 실체적 규칙들(substantive rules)이 수행하는 기능이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그 의미가) 단지 제재적-불이익들의 체계(system of penalties)를 운용하는 공무담당자들에 대한 향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공무적 생활(non-official life)의 활동 속에서 일반 시민을 향도하는 데 있다는 관념은, 핵심적인 구별들을 폐기하고 법이 사회적 통제 수단(means of social control)으로서 지니는 특유한 성격을 흐리게 하지 않고서는 제거될 수 없다. 범죄에 대한 처벌(punishment), 예컨대 벌금(fine)은 행위 경로(course of conduct)에 부과되는 조세(tax)와 동일하지 않다. 비록 두 경우 모두 동일한 금전적 손실(money loss)을 부과하도록 공무담당자들에게 지시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이러한 관념들을 구별짓는 것은 전자는 후자와 달리 일반 시민의 행위를 향도하기 위해 세워진 규칙의 침해(violation)라는 형태의 위반행위(offence) 또는 책무 위반(breach of duty)을 포함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일반적으로 명확한 구별은 특정한 상황에서는 흐려질 수 있다. 조세는 재정 수입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과세 대상이 되는 활동들을 억제하기 위해 부과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법은 ‘그것들을 범죄화(makes them criminal)’할 때와는 달리 해당 활동들이 포기되어야 한다는 명시적 표지들(indications)을 제공하지 않는다. 반대로, 어떤 형사 위반행위(criminal offence)에 대해 납부되어야 하는 벌금이 화폐 가치 하락으로 인해 매우 소액이 되면, 그것은 기꺼이 납부될 수 있고, 그 결과 아마도 ‘단순한 조세들(mere taxes)’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면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 규칙이, 형사법의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행위의 기준(standard of behaviour)으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감각이 상실되기 때문에 ‘위반행위들(offences)’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된다.

(p. 40) 때때로 검토 중인 것과 같은 이론들을 옹호하는 논거로서, 법을 제재들을 적용하라는 지시(direction)의 형식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명료성이 증진된다고 주장된다. 이러한 형식은 이른바 ‘나쁜 사람(bad man)’이 법에 관하여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을 분명히 드러내 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참일 수는 있으나, 그러한 점만으로는 이 이론에 대한 옹호로서 충분하다고 보이지 않는다. 왜 법은, 요구되는 바를 기꺼이 따를 의사가 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들을 수 있기만 하면 되는 ‘혼란스러운 사람(puzzled man)’이나 ‘무지한 사람(ignorant man)’에게 동등하게, 아니 그보다 더 큰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 되는가? 또는 자신의 사무를 정리하고자 하나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 들을 수 있으면 되는 ‘자신의 사무를 정리하고자 하는 사람(man who wishes to arrange his affairs)’에게는 왜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하는가? 물론 법을 이해하려면 법원이 제재들을 적용하게 될 때 법원이 그것을 어떻게 운용하는지(administer)를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이해해야 할 전부가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도록 이끌어서는 안 된다. 사회적 통제의 수단으로서 법의 주된 기능들은, 체계의 실패에 대비한 중요하지만 여전히 부차적인 마련들(ancillary provisions)을 나타내는 사적 소송(private litigation)이나 형사 기소(prosecutions)에서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법정 밖에서 삶을 통제하고(control), 향도하며(guide), 계획하는(plan) 데 법이 사용되는 다양한 방식들 속에서 보인다.

이 이론의 극단적 형태가 수행하는 부차적인 것과 주된 것의 전도(inversion of ancillary and principal)는, 다음과 같은 게임 규칙의 재구성 제안에 비유될 수 있다. 크리켓이나 야구의 규칙을 고찰하는 한 이론가는, 규칙들의 용어법과 일부 규칙은 주로 선수들(players)에게, 일부는 주로 경기 담당자들(심판(umpire)과 득점 기록원(scorer))에게, 또 일부는 양자 모두에게 향하여 있다(addressed)는 관습적 주장에 의해 가려져 있던 통일성을 자신이 발견했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이 이론가는 ‘모든 규칙은 실제로는(really) 특정한 조건 하에서 경기 담당자들에게 어떤 행위를 하도록 지시하는 규칙들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공을 친 뒤의 특정한 움직임이 ‘득점(run)’을 구성한다는 규칙이나, 잡히면 한 선수가 ‘아웃(out)’이 된다는 규칙은, 실은 경기 담당자들에 대한 복합적 지시들(complex directions)일 뿐이라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득점 기록원에게 기록부(scoring-book)에 ‘득점(a run)’을 기재하라는 지시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심판에게 해당 선수를 ‘필드 밖으로 나가라(off the field)’고 명령하라는 지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자연스러운 항변은, 이러한 규칙의 변형을 통해 규칙들에 부과된 통일성이 규칙들이 작동하는 방식들, 그리고 선수들이 목적지향적 활동들을 향도하는 데 규칙들을 사용하는 방식을 은폐함으로써, 게임 그 자체인 경쟁적이지만 협동적인 사회적 사업에서의 규칙들의 기능을 흐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 이론의 덜 극단적인 형태는 형사법과 (p. 41) 그 밖의 책무를 부과하는 모든 법들을 그대로 두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법들은 이미 강제적 명령들(coercive orders)이라는 단순한 모델에 부합하기(conform to)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법적 권한들을 부여하고 그 행사 방식을 규정하는 모든 규칙들을 이 단일한 형태로 환원한다. 이 점에서 그것은 이론의 극단적 형태와 동일한 비판에 열려 있다. 만약 우리가 모든 법을 오로지 그 책무들이 부과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법의 다른 모든 측면을 그들에게 책무들이 귀속되는 다소 정교한 조건들의 지위로 축소한다면, 우리는 적어도 책무만큼이나 법의 고유한 특징을 이루고 사회에 대해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요소들을 단지 종속된(subordinate) 것으로 취급하게 된다. 사적 권한들(private powers)을 부여하는 규칙들은, 그것들이 이해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그렇게 볼 때 이러한 규칙들은 강제적 통제(coercive control)라는 요소를 넘어, 법이 사회생활에 추가로 도입한 하나의 부가적 요소로 나타난다. 이는 이러한 법적 권한들의 보유(possession)가, 만약 그러한 규칙이 없다면 단지 책무-담지자(duty-bearer)에 불과했을 사인(private citizen)을 사적 입법자(private legislator)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계약들(contracts), 신탁들(trusts), 유언들(wills), 그리고 그가 구축할 수 있도록 가능하게 된 권리들과 책무들의 기타 구조들(structures of rights and duties)의 영역 내에서 법의 경로(course of the law)를 결정할 권능을 부여받는다(is made competent). 이러한 특별한 방식으로 사용되며, 이처럼 거대하고 독특한 편익(amenity)을 부여하는 규칙들이, 그 책무의 귀속양상(incidence), 곧 그 책무가 누구에게 어떻게 귀속되는지가 기실 부분적으로 바로 그러한 권한들의 행사에 의해 결정되는, 책무를 부과하는 규칙들과 구별되는 것으로 인정되지 않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러한 권한부여 규칙들(power-conferring rules)은 사회생활 속에서 책무를 부과하는 규칙들과는 다르게 사고되고(thought of), 말해지며(spoken of), 사용되고, 또한 상이한 이유로 가치평가된다. 성격상의 차이를 가르는 다른 검사 기준들(tests)이 과연 무엇일 수 있겠는가?

입법 권한과 사법 권한을 부여하고 그 행사를 규정하는 규칙들을, 책무들이 발생하는 조건들에 대한 진술로 환원하는 것은 공적 영역에서도 유사하게 가리는 결함(obscuring vice)을 지닌다. 이러한 권한들을 행사하여 권위 있는 제정물들(enactments)과 명령들(orders)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책무의 이행(performance of duty)이나 강제적 통제(coercive control)에의 복종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목적지향적 활동(purposive activity) 속에서 이러한 규칙들을 사용한다. 이러한 규칙들을 책무 규칙들의 단순한 측면들이나 파편들로 표상하는 것은, 사적 영역에서보다도 더욱, 법의 고유한 특징들과 그 틀 안에서 가능한 활동들의 특수성을 흐리게 만든다. 왜냐하면 사회 안에 입법자가 책무 규칙들을 변경하고 추가할 수 있게 하는 규칙들, (p. 42) 그리고 판사가 언제 책무 규칙들이 어겨졌는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규칙들을 도입하는 것은, 사회에 있어 바퀴의 발명만큼이나 중요한 진전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중요한 진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제5장에서 우리가 논증하겠지만, 법-이전 세계(pre-legal world)에서 법적 세계(legal world)로의 이행을 이루는 단계로 정당하게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2. 적용 범위(THE RANGE OF APPLICATION)

명백히 형벌 제정법(penal statute)은 법들의 모든 다양상들(varieties of law) 가운데서도 강제적 명령들(coercive orders)의 단순한 모델에 가장 근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법들조차도, 이 절에서 검토되는 바와 같은 일정한 특성들을 지니고 있으며, 이 모델은 바로 그러한 특성들에 대해 우리를 눈멀게 만들기 쉽다. 우리는 그 영향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그것들을 이해할 수 없다. 위협으로 뒷받침된 명령은 본질적으로 타인들(others)이 특정한 일을 하거나 삼가기를 바라는 바람의 표현(expression of a wish)이다. 물론 입법이 이러한 오직 타인지향적인 형태(exclusively other-regarding form)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 입법 권한을 행사하는 절대 군주는 어떤 제도들에서는 자신이 제정한 법들의 포괄 범위(scope of the laws)로부터 항상 제외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민주적 제도에서도 법을 제정한 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법 안에서 지목된(indicated) 특정 부류들에만 적용되는 법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법의 적용 범위(range of application)는 언제나 그 해석의 문제이다. 해석상 그것을 만든 자들을 제외하는 것으로 발견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실제로 오늘날에는 법을 만든 자들 자신에게 법적 의무들(legal obligations)을 부과하는 많은 법들이 제정되고 있다. 입법은, 위협 아래에서 단지 타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는 것과 구별되어, 이와 같은 자기구속적(self-binding) 효력(force)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입법에는 본질적으로 타인지향적인 것이 없다. 이러한 법적 현상은, 우리가 이 모델의 영향 아래에서 법들을 언제나 법 위에 있는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그 법에 종속된 타인들을 상대로 정립한 것으로 생각하는 한에서만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이처럼 단순함 때문에 매우 매력적인, 법창출(law-making)의 수직적 혹은 ‘상하(top-to-bottom)’ 심상(image)은, 입법자를 그의 공적 행위능력(official capacity)에서는 하나의 인격으로, 사적 행위능력(private capacity)에서는 또 다른 인격으로 구별하는 장치(device)를 통해서만 현실과 조화될 수 있다. 이 첫 번째 행위능력에서 행위할 때 그는 다른 사람들, 그리고 그의 ‘사적 행위능력’에서의 자기 자신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게 의무들(obligations)을 부과하는 법을 제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표현 형식들(forms of expression)에는 비난할 만한 점은 없지만, (p. 43) 제IV장에서 보게 되듯이, 이러한 상이한 행위능력들(capacities)의 관념(notion)은 강제적 명령들로 환원될 수 없는 권한부여 법규칙들(power-conferring rules of law)의 관점에서만 이해 가능하다. 한편 이러한 복잡한 장치는 사실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입법적 제정(legislative enactment)의 자기구속적 성질(self-binding quality)을 그것 없이도 설명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상생활과 법 모두에서, 그것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어떤 것을 이미 수중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약속(promise)의 작용(operation)이며, 이는 법의 모든 특징은 아니지만 많은 특징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강제적 명령들의 모델보다 여러 방식에서 훨씬 더 나은 모델이다.

약속한다는 것은 약속자(promisor)에게 의무(obligation)를 발생시키는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다(say). 말들(words)이 이러한 종류의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적절한 사람들이 적절한 경우에 (즉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는 정신이 온전한 사람들로서 다양한 종류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경우) 말을 사용하면, 그 말을 사용하는 자들은 그 말들에 의해 지정된(designated) 일들을 해야 할 구속을 받는다고 정하는 규칙들(rules)이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약속할 때에는, 우리 스스로에게 의무들(obligations)을 부과하고 타인에게 권리들(rights)을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도덕적 상황(moral situation)을 변경하기 위해 특정된 절차들(specified procedures)을 사용하는 것이며, 법률가들의 어법(parlance)으로 말하면 이를 위해 규칙들에 의해 부여된 ‘권한(a power)’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 약속자 ‘내부에(within)’ 두 인격들(persons)을 구별하여, 하나는 의무 창설자의 행위능력에서 행위하고 다른 하나는 구속되는 인격의 행위능력에서 행위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어떤 행위를 하라고 명령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기실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입법의 자기구속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장치를 생략할 수 있다. 법을 제정하는 행위는 약속을 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그 과정을 규율하는 일정한 규칙들의 존재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 규칙들에 의해 자격이 부여된 사람들이 말하거나 쓴 말들(words said or written)이, 그 규칙들이 특정한 절차를 따를 때에는, 그 말들에 의해 명시적으로 또는 묵시적으로 지정된(designated) 범위(ambit)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의무들(obligations)을 발생시킨다. 여기에는 입법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 자신도 포함될 수 있다.

물론 입법의 자기구속적 성질을 설명해 주는 이러한 유비(analogy)가 존재하지만, 약속을 하는 행위와 법을 제정하는 행위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들이 있다. 후자를 규율하는 규칙들은 훨씬 더 복잡하며, 약속이 갖는 쌍방적 성격(bilateral character)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는, 약속이 누구에게(to whom) 이루어지는지라는 의미에서 약속수령자(promisee)라는 특수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그 이행(performance)에 대하여 특별한 청구권을, (p. 44) 설령 그것이 유일한 청구권은 아닐지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들에서 보면, 잉글랜드 법에 알려진 의무의 자기부과(self-imposition of obligation)의 다른 형태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재산에 관하여 자신을 타인을 위한 수탁자(trustee)로 선언하는 경우는, 입법의 자기구속적 측면에 대해 더 가까운 유비를 제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제정(enactment)에 의한 입법 행위는 이러한 사적인 방식들, 즉 개별적인 법적 의무들(legal obligations)을 창설하는 방식들을 고찰함으로써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강제적 명령들 또는 규칙들이라는 모델에 대한 가장 필요한 교정은, 입법을 사회가 일반적으로 따라야 할 일반적 행위 기준들(general standards of behaviour)의 도입 또는 수정으로 보는 새로운 구상(fresh conception)이다. 입법자는 반드시 타인에게 명령을 내리는 자, 즉 정의상 자신이 하는 일의 적용 범위 밖에 있는 누군가와 같은 것은 아니다. 그는 약속을 하는 사람(the giver of a promise)처럼, 규칙들에 의해 부여된 권한들(powers)을 행사하는 자이다. 그리고 종종, 약속자(promisor)가 반드시 그러해야(must) 하듯이, 그 자신도 그 범위(ambit) 안에 포함될 수 있다.

3. 기원 양식들(MODES OF ORIGIN)

지금까지 우리는 법들의 다양상들(varieties of law)에 관한 논의를, 앞서 강조한 차이점들에도 불구하고 강제적 명령들(coercive orders)과 하나의 두드러진 유비점을 지니는 제정법들(statutes)에 국한해 왔다. 하나의 법을 제정하는 것(enactment of a law)은, 명령을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도적이고 날짜를 특정할 수 있는 행위이다(is a deliberate datable act). 입법에 참여하는 자들은 의식적으로(consciously) 법을 만드는 절차를 운용하며, 이는 마치 명령을 내리는 자가 자신의 의도들이 인정(recognition)되고 준수(compliance)되도록 확보하기 위해 특정한 말의 형식(form of words)을 의식적으로(consciously) 사용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법의 분석에서 강제적 명령들의 모델을 사용하는 이론들은, 모든 법이, 그 위장들을 벗겨내면(strip away the disguises), 이 점에서 입법과 닮아 있으며, 법으로서의 그 지위를 의도적인 법창출 행위(law-creating act)에 빚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주장(claim)을 제기한다. 이 주장과 가장 명백하게 충돌하는 법 유형(type of law)은 관습(custom)이다. 그러나 관습이 ‘정말로(really)’ 법인가에 관한 논의는 두 가지 구별되는 쟁점들을 풀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종종 혼란스러웠다. 첫 번째 쟁점은 ‘관습 그 자체로서(custom as such)’가 법인지 아닌지이다. 관습 그 자체가 법이 아니라는 부정의 의미와 일리는, 어떤 사회든 그 법의 일부를 전혀 이루지 않는 많은 관습들이 존재한다는 단순한 진리에 있다. 여성에게 모자를 벗지 않는 것은 어떤 법규칙(rule of law)의 위반도 아니며, 법에 의해 허용(permitted)된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법적 지위도 갖지 않는다. 이것은 관습이 특정 법체계에 의해 법으로서 ‘인정된’(‘recognized’ as law) 부류의 관습들 중 하나인 경우에만 (p. 45) 법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두 번째 쟁점은 ‘법적 인정(legal recognition)’의 의미에 관한 것이다. 하나의 관습이 법적으로 인정된다(legally recognized)는 것은 무엇인가? 강제적 명령들의 모델이 요구하듯, 그것은 누군가, 어쩌면 ‘주권자(the sovereign)’ 혹은 그의 대리인(agent)이 그 관습에 복종하라고 명령했다는 사실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 법으로서의 지위가 이 점에서 입법 행위와 닮은 어떤 것에 빚지고 있다는 뜻인가?

현대 세계에서 관습은 그다지 중요한 법의 ‘원천(source)’이 아니다. 그것은 보통 종속된(subordinate) 원천인데, 이는 입법부가 제정법(statute)으로 관습 규칙의 법적 지위를 박탈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많은 체계에서 법원이 어떤 관습이 법적 인정(legal recognition)에 적합한지를 판단할 때 적용하는 검사 기준들(tests)은 ‘합당성(reasonableness)’이라는 관념(notion)과 같은 유동적인 관념들을 포함하며, 이것들은 관습을 수용하거나 배제할 때 법원이 사실상 통제되지 않는 재량(discretion)을 행사한다고 보는 견해에 적어도 어느 정도의 토대를 제공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관습의 법적 지위를 법원이나 입법부 또는 주권자가 그렇게 ‘명령했다(ordered)’는 사실에 귀속시키는 것은, 이론의 요점을 빼앗아 갈 만큼 확장된 의미를 ‘명령(order)’에 부여해야만 관철될 수 있는 이론을 채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적 인정(legal recognition) 교설을 제시하기 위해, 우리는 강제적 명령들로서의 법 구상(conception of law as coercive orders)에서 주권자(the sovereign)가 수행하는 역할을 상기해야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법은 주권자 또는 그가 자신을 대신하여 명령들을 내리도록 선택할 수 있는, 그에게 종속된 자(subordinate)의 명령이다. 첫 번째 경우, 법은 ‘명령(order)’이라는 가장 문자적인 의미에서 주권자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진다. 두 번째 경우, 종속된 자가 내린 명령은, 그것이 다시 주권자가 발한 어떤 명령을 좇아(in pursuance of) 내려진 것일 때에만 법으로서의 지위에 오른다(rank as law). 이 종속된 자는 주권자를 대신하여 명령들을 발령할(issue orders) 일정한 권한(authority)을 주권자로부터 위임받아야 한다. 때때로 이러한 권한은, 예컨대 장관에게 일정한 사항적 범위(subject-matter)에 대해 ‘명령들을 제정하도록(make orders)’ 지시하는 명시적 지시(express direction)를 통해 부여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이 여기서 멈춘다면 현실을 설명하지 못함이 분명하므로, 이 이론은 확장되어 주권자가 자신의 의지(will)를 덜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의 명령들은 ‘묵시적(tacit)’일 수 있다. 즉, 주권자가 명시적 명령을 내리지 않더라도, 그에게 종속된 자들이 수범자들(subjects)에게 명령들을 내리고 불복종에 대해 그들을 처벌할 때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수범자들이 특정한 일을 하기를 바란다는 자신의 의도들(intentions)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p. 46) 군사적 예시는 ‘묵시적 명령(tacit order)’이라는 관념을 가능한 만큼 명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자신보다 상급자인 자들에게 스스로 반복적으로 일양적인 복종을 하는 어느 하사가 자기 부하들에게 특정한 잡무(fatigues)를 하라고 명령하고, 그들이 불복종하면 처벌한다. 장군은 이 사실을 알고도 사태가 계속되도록 허용한다. 비록 그가 하사에게 잡무를 중지하라고 명령했다면 하사는 그 명령에 복종했을 터이지만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장군이 병사들이 잡무를 수행하기를 바라는 자신의 의지(will)를 묵시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개입할 수 있었을 때의 그의 비개입(non-interference)은, 그가 잡무를 명령할 때 사용했을지도 모를 말들에 대한 침묵의 대체물이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법체계 안에서 법의 지위를 갖는 관습 규칙들을 바라보도록 요청받는다. 법원이 구체적 사건들에서 그것들을 적용하기 전까지, 이러한 규칙들은 단지(mere) 관습들일 뿐이며, 어떤 의미에서도 법은 아니다. 법원이 그것들을 사용하고, 그것들에 따라 집행되는 명령들을 만들 때, 그때 비로소 이 규칙들은 법적 인정(legal recognition)을 받는다. 개입할 수도 있었던 주권자는, 이미 존재한 관습(pre-existing custom)을 토대로 ‘만들어진(fashioned)’ 법관들의 명령들에 수범자들(subjects)이 복종하도록 묵시적으로 명령한 셈이 되는 것이다.

관습(custom)의 법적 지위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두 가지 상이한 비판에 열려 있다. 첫 번째 비판은, 관습 규칙들이 소송(litigation)에서 사용되기 전까지는 법으로서의 지위를 전혀 갖지 못한다는 것이 반드시(necessarily)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이 반드시 그렇다는 단언은 단순한 독단(dogma)이거나, 어떤 체계들에서 그러할 수 있는 것과 필연적인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특정하게 규정된 방식으로 제정된 제정법들(statutes)이, 법원이 구체적 사건들에서 그것들을 적용하기 이전에도 법이라면, 특정하게 규정된 종류의 관습들 역시 그렇게 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입법부가 제정하는 것은 법이라는 일반 원칙을 법원이 구속적인 것으로 인정하듯이(recognize as binding), 특정하게 규정된 종류의 관습들은 법이라는 또 다른 일반 원칙을 법원이 구속적인 것으로 인정한다고 보는 것이 왜 참일 수 없는가? 구체적 사건들이 발생했을 때, 법원이 제정법을 적용하듯이 관습을, 이미 법이고 법이기 때문에 적용한다고 주장하는 데 어떤 불합리가 있는가? 물론 어떤 법체계가, 법원이 통제되지 않는 재량으로 그렇게 선언하기 전까지는 어떠한 관습 규칙도 법의 지위를 갖지 않는다고 규정할 수도 있다(possible). 그러나 이것은 단지 하나의(one) 가능성일 뿐이며, 법원이 그와 같은 재량을 갖지 않는 체계들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p. 47) 관습 규칙은 법원에서 적용되기 전까지 법의 지위를 가질 수 없다(cannot)는 일반적 주장을 확립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이의들에 대한 답변은 종종, 단지 “무언가가 법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되도록 명령(order) 되어야 한다”는 독단을 다시 단언하는 데 그친다. 그러면 법원이 제정법과 관습에 대해 가지는 관계 사이에 제안된 병행성은, 법원이 적용하기 전에 제정법은 이미 ‘명령’되었지만 관습은 그렇지 않다는 근거에서 거부된다. 덜 독단적인 논증들도 특정 체계들의 특수한 장치들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부적절하다. 예컨대, 영국법에서는 어떤 관습이 ‘합당성(reasonableness)’ 검사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법원에 의해 거부될 수 있다는 사실이, 관습은 법원이 적용하기 전까지는 법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때때로 말해진다. 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영국법에서의 관습에 관해 무언가를 증명할 수 있을 뿐이다. 일부가 주장하듯, 법원이 합당한 경우에만 일정한 관습 규칙들을 적용하도록 구속되는 체계와 법원이 통제되지 않는 재량을 갖는 체계를 구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점이 참인 경우가 아니라면, 그것조차도 확립될 수 없다.

관습이 법일 경우 그 법적 지위를 주권자의 묵시적 명령에 빚지고 있다는 이론에 대한 두 번째 비판은 더욱 근본적이다. 설령 그것이 개별 사건에서 법원에 의해 집행되기 전까지는 법이 아니라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주권자가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 규칙들이 준수되기를 바랐다는(wish) 묵시적 표현으로 취급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46쪽의 매우 단순한 군대 사례에서도, 장군이 하사의 명령들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로부터 그가 그 명령들에 복종하기를 바랐다고 보는 것은 필연적 추론이 아니다. 그는 단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부하를 달래기를 바랐고 병사들이 잡무(fatigues)를 회피할 어떤 방법을 찾기를 바랐을 뿐일 수도 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그가 잡무가 수행되기를 바랐다고 추론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추론한다면 우리의 증거에서 중요한 부분은 장군이 그 명령들이 내려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들을 숙고할 시간이 있었으며,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점일 것이다. 관습의 법적 지위를 설명하기 위해 주권자의 의지(will)의 묵시적 표현이라는 관념(idea)을 사용하는 데 대한 주된 반대 이유는, 어떤 현대 국가에서도 주권자를 최고 입법부나 선거권자 집단(electorate)으로 동일시하든 간에, 그러한 앎, 숙고, 그리고 개입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주권자’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p. 48)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물론 대부분의 법체계에서 관습은 제정법(statute)에 종속된 법의 원천(source of law)이라는 점은 참이다. 이는 입법부가 그것들의 법적 지위를 박탈할 수는 있었음을(could) 의미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입법자의 바람들(wishes)의 징후(sign)라고 보기는 어렵다. 법원이 적용하는 관습 규칙들에 입법부의 주의가 기울여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선거권자 집단의 주의는 더욱 드물다. 따라서 그들의 비개입은 장군이 하사의 명령들에 개입하지 않은 경우와 비교될 수 없으며, 설령 장군의 경우에 그 비개입으로부터 그의 부하의 명령들에 복종하기를 바랐다는 추론을 우리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관습의 법적 인정(legal recognition)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관습 규칙(customary rule)은, 그것을 특정 사건에 적용한 법원의 명령(order)이나 최고 법창출 권력(supreme law-making power)의 묵시적 명령(tacit order)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에 그 법적 지위를 빚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제정법(statute)처럼, 법원이 그것을 적용하기 이전에도 법일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다음 장에서 우리가 상세히 검토하게 될 바와 같이, 법이 존재하는 곳에는 그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일반 명령들만이 법인 어떤 주권적 인격이나 인격들(some sovereign person or persons)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교설(doctrine)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야 비로소 충분히 답할 수 있다. 그때까지는, 이 장의 결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강제적 명령들로서의 법 이론은, 모든 체계들에서 세 가지 주요한 점에서 이 설명에 들어맞지 않는 법들의 다양상들(varieties of law)이 발견된다는 이의에 처음부터 직면한다. 첫째, 이에 가장 근접한 형벌 제정법(penal statute)조차도 흔히 타인들에게 내려지는 명령들과는 다른 적용 범위(range of application)를 가지는데, 그러한 법은 타인들뿐만 아니라 그것을 제정한 자들 자신에게도 책무들(duties)을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다른 제정법들(statutes)은 명령들과 달리 사람들에게 어떤 행위를 요구하지 않을 수 있으며, 대신 그들에게 권한들(powers)을 부여할 수 있다. 즉, 그것들은 책무들을 부과하지 않고, 법의 강제적 틀 안에서 법적 권리들과 책무들을 자유롭게 창출할 수 있는 편의수단들(facilities)을 제공한다. 셋째, 비록 제정법의 제정(enactment of a statute)이 어떤 점에서는 명령의 발령과 유비적이더라도, 일부 법규칙들(rules of law)은 관습(custom)에서 기원하며, 그와 같은 어떤 의식적인 법창출 행위(conscious law-creating act)에도 그 법적 지위를 빚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이의들에 맞서 이 이론을 방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책들(expedients)이 채택되어 왔다. 원래는 단순했던 해악의 위협 또는 ‘제재(sanction)’라는 관념(idea)은 (p. 49) 법적 거래(legal transaction)의 무효(nullity)까지 포함하도록 늘어났고, 법규칙(legal rule)의 관념(notion)은 권한들을 부여하는 규칙들을 법의 단순한 파편들로 보아 배제하도록 좁혀졌으며, 그 제정물들(enactments)이 자기구속적인 입법자라는 단일한 자연인(natural person) 안에서 두 인격들(two persons)이 발견되었고, 명령의 관념(notion)은 언어적 표현(verbal expression)에서, 종속된 자들(subordinates)이 내린 명령들에 비개입하는 것(non-interference)으로 이루어진 의지의 ‘묵시적(tacit)’ 표현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이러한 장치들의 기발함(ingenuity)에도 불구하고, 위협으로 뒷받침된 명령들의 모델은 법을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법의 더 많은 부분을 가려버린다. 법들의 다양상(the variety of laws)을 이 하나의 단순한 형식으로 환원하려는 시도는 결국 그것들에 허위적 통일성(spurious uniformity)을 강요하는 결과로 끝난다. 기실, 여기에서 통일성을 찾는 것 자체가 오류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제5장에서 우리가 논증하겠지만, 법의 하나의 구별적 특징—아니 어쩌면 바로 그 구별적 특징—은 서로 다른 유형의 규칙들의 융합(fusion)에 있기 때문이다.

제3장 주석

26쪽. 법의 다양상들(The varieties of law). 법에 대한 일반적 정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유형의 법규칙들 사이에 존재하는 형식과 기능상의 차이들이 가려지게 되었다. 이 책의 주된 논증은, 의무들(obligations) 또는 책무들(duties)을 부과하는 규칙들과 권한들(powers)을 부여하는 규칙들 사이의 차이들이 법리학(jurisprudence)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법은 이 두 가지 상이한 유형의 규칙의 결합체(union)로 이해될 때 가장 잘 설명된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법규칙 유형들 사이의 주요 구분으로 이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다른 여러 구분 역시 가능하며, 어떤 목적에서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법들의 상이한 사회적 기능들을 반영하고, 그러한 기능이 흔히 그 언어적 형식에서도 드러나는 더 유익한 분류들에 대해서는 Daube의 Forms of Roman Legislation (1956)을 참조할 수 있다.

27쪽. 형사법과 민사법에서의 책무(Duties in criminal and civil law). 책무들을 부과하는 규칙들과 권한들을 부여하는 규칙들 사이의 구분에 주의를 집중하기 위해, 우리는 형사법상의 책무들과 불법행위법(tort) 및 계약법(contract)상의 책무들 간의 많은 차이들을 생략하였다. 이러한 차이들에 주목한 일부 이론가들은, 계약이나 불법행위의 경우에 일정한 행위들을 하거나 삼갈 ‘일차적(primary)’ 또는 ‘선행적(antecedent)’ 책무들(예컨대 계약으로 정해진 어떤 행위를 이행하거나 명예훼손을 삼갈 책무들)은 허상이며, ‘진정한(genuine)’ 책무들은 이른바 일차적 책무를 이행하지 못한 경우를 포함한 일정한 사정들(eventualities)에서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구제적(remedial) 또는 제재적(sanctioning) 책무들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Holmes의 The Common Law 제8장을 참조하되, Buckland의 Some Reflections on Jurisprudence 96쪽과 The Nature of Contractual Obligation, Cambridge Law Journal 제8권(1944년)에서의 비판을 함께 참고하라. 또한 Jenks의 The New Jurisprudence 179쪽도 참조할 것.

27쪽. 의무(obligation)와 책무(duty). 영미법(Anglo-American Law)에서는 이 두 용어가 현재 대체로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형사법이 ‘의무(obligations)’를 부과한다고 말하는 것은 (법의 요구 사항에 대한 추상적 논의, 예컨대 도덕적 의무와 대비되는 법적 의무의 분석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일반적이지 않다. 법률가들은 여전히 계약상의 의무나 불법행위 후 손해배상 의무 등처럼 특정 개인이 다른 특정 개인에 대해 가지는 대인적 권리(right in personam)가 존재하는 경우에 ‘의무(obligation)’라는 단어를 가장 흔히 사용한다. 그 외의 경우에는 ‘책무(duty)’라는 표현이 보다 일반적이다. 이는 현대 영어법에서, 로마법의 obligatio가 특정한 개인들 사이를 묶는 법적 유대(vinculum juris)라는 본래 의미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흔적이다. (Salmond, Jurisprudence, 제11판, 제10장 260쪽 및 제21장 참조; 또한 본서 제5장 제2절 참조).

28쪽. 권한부여 규칙들(Power-conferring rules). 대륙법계의 법리학에서는 법적 권한들(legal powers)을 부여하는 규칙들을 종종 ‘권능 규범들(norms of competence)’이라 부른다. (Kelsen, General Theory, 90쪽, A. Ross, On Law and Justice (1958), 34, 50–59, 203–225쪽 참조). Ross는 사적 권능(private competence)과 사회적 권능(social competence)을 구분하며, 이에 따라 계약과 같은 사적 처분들(private dispositions)과 공적 법적 행위들(public legal acts)을 구별한다. 그는 또한 권능 규범들은 책무들을 규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권능 규범은 그 자체로는 직접적인 지시(directive)가 아니며, 절차를 책무로 규정하지 않는다. … 권능 규범 자체는 권능을 가진 자가 자신의 권능을 행사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위 책, 207쪽). 그러나 이러한 구분에도 불구하고, Ross는 본 장에서 비판된 관점을 받아들인다. 즉, 그는 권능 규범들도 결국 ‘행위 규범들(norms of conduct)’로 환원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두 유형의 규범은 모두 “법원들에 대한 지시들(directives to the Courts)”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본다. (같은 책, 33쪽).

이 장의 본문에서 이 두 규칙 유형의 구분을 제거하거나 그것이 단지 피상적이라는 것을 보이려는 다양한 시도들을 비판한 내용을 검토할 때에는, 법 이외에도 이러한 구분이 중요해 보이는 사회생활의 형식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도덕(morals)에서, 어떤 사람이 구속력 있는 약속을 했는지를 판단하는 모호한 규칙들은 개인들에게 제한된 도덕적 입법 권한들을 부여하며, 따라서 의사에 반하여(in invitum) 책무들을 부과하는 규칙들과 구별될 필요가 있다 (Melden, ‘On Promising’, Mind 제65권 (1956); Austin, ‘Other Minds’, PAS 보충권 20권 (1946), Logic and Language 2집에 재수록; Hart, ‘Legal and Moral Obligation’, Melden 편, Essays on Moral Philosophy 참조). 복잡한 게임의 규칙들도 이 관점에서 유익하게 분석될 수 있다. 일부 규칙은 형사법과 유비적으로, 제재적-불이익을 조건으로 특정 행위 유형들을 금지한다(예: 반칙 행위나 심판에 대한 무례). 또 다른 규칙들은 경기 담당자들(심판, 기록원, 주심)의 관할권(jurisdiction)을 규정한다. 다시 다른 규칙들은 득점하려면 무엇이 행해져야 하는지를 규정한다(예: 골(goal)이나 득점(run)). 득점이나 골을 위한 조건을 충족하는 것은 경기에서 승리를 향한 핵심적 국면을 표시하며, 이를 충족하지 못한 것은 득점 실패이고, 이 관점에서 ‘무효(nullity)’이다. 여기에는 일응(prima facie) 게임 안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서로 다른 유형의 규칙들이 있다. 그러나 어떤 이론가는 득점 실패라는 무효가 금지된 행위에 대한 ‘제재(sanction)’ 또는 제재적-불이익(penalty)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또는 모든 규칙이 일정한 사정 아래 경기 담당자들에게 일정한 조치를 취하라는 지시들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예: 득점을 기록하거나 선수를 필드 밖으로 내보내는 것), 이러한 규칙들이 모두 하나의 유형으로 환원될 수 있으며 또 환원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두 유형의 규칙을 하나의 유형으로 환원하는 것은, 그것들의 성격을 흐리게 만들며, 게임에서 중심적으로 중요한 것을 단지 보조적인 것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본 장에서 비판한 환원주의적 법이론들이, 여러 유형의 법규칙들이 그 일부를 이루는 사회 활동 체계 안에서 갖는 다양한 기능들을 이와 유사하게 어느 정도 은폐하는지 숙고할 가치가 있다.

29쪽. 사법적 권한들을 부여하는 규칙들과 판사에게 책무들을 부과하는 추가 규칙들(Rules conferring judicial powers and additional rules imposing duties on the judge). 동일한 행위가 관할권 초과(excess of jurisdiction)로 취급되어 사법 결정이 무효(nullity)로 파기될 수 있게 만드는 동시에, 판사가 자신의 관할권을 넘지 않도록 요구하는 특별한 규칙 아래에서 책무 위반으로 취급될 수 있다고 해도, 이 두 규칙 유형의 구분은 여전히 유지된다. 예컨대, 판사가 자신의 관할권을 넘어 사건을 심리하거나 그 결정이 유효하지 않게 될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막기 위한 금지명령(injunction)을 받을 수 있다면, 혹은 그러한 행위에 대해 제재적-불이익들(penalties)이 규정되어 있다면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법적으로 자격이 없는 사람이 공적 절차에 참여한 경우, 이는 그를 제재적-불이익에 노출시킬 뿐 아니라 그 절차를 유효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제재적-불이익에 대해서는 Local Government Act 1933, 제76조 및 Rands v. Oldroyd (1958), 3 AER 344 참조. 다만 이 법은 지방정부의 절차가 구성원 자격의 결함으로 인해 유효하지 않게 되지는 않는다고 규정한다—같은 법, 부속서 III, 제5부 제5항).

33쪽. 제재로서의 무효(Nullity as a sanction). Austin은 The Lectures 제23강에서 이 구상(conception)을 채택하였으나, 별도로 전개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한 비판은 Buckland, 앞서 인용한 책의 제10장에서 참조하라.

35쪽. 권한부여 규칙을 책무를 부과하는 규칙의 파편들로 보는 이론(Power-conferring rules as fragments of rules imposing duties). 이 이론의 극단적인 형태는 Kelsen이 전개한 것으로, 법의 일차 규칙들(primary rules of law)은 법원들이나 공무담당자들이 일정 조건 하에서 제재들을 적용하도록 요구하는 규칙들이라는 견해와 함께 제시된다 (General Theory, 58–63쪽; 헌법 관련 논의는 143–144쪽 참조). 그는 “헌법 규범들은 독립적이고 완결된 규범들이 아니라, 법원과 기타 기관들이 적용해야 하는 모든 법규범들의 내재적 부분들(intrinsic parts)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교설은 법의 동적(dynamic) 제시와 구별되는 정적(static) 제시로 제한됨으로써 한정된다 (같은 책, 144쪽). Kelsen의 논의는 또한 다음과 같이 복잡해진다. 즉, 그는 예컨대 계약을 체결할 권한과 같은 사적 권한들을 부여하는 규칙들의 경우, 계약에 의해 창출되는 ‘이차 규범(secondary norm)’ 또는 책무들은 “단순한 법리학적 이론(juristic theory)의 보조적 구성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같은 책, 90쪽, 137쪽). 그럼에도 본질적으로 Kelsen의 이론은 본 장에서 비판된 이론이다. 보다 단순한 형태로는 Ross의 주장을 참조할 수 있다: “권능 규범들은 간접적 형식의 행위 규범들이다”(Ross, 같은 책, 50쪽). 모든 규칙을 책무들을 창출하는 규칙들로 환원하는 보다 온건한 이론으로는 Bentham의 Of Laws in General, 제16장 및 부록 A–B 참조.

39쪽. 예측으로서의 법적 책무와 행위에 대한 조세로서의 제재. 이 두 이론은 Holmes의 “The Path of the Law” (1897, Collected Legal Papers)를 참조하라. Holmes는 책무라는 관념이 도덕적 책무와 혼동되었다고 보고, 그것을 “냉소적 산(acid of cynicism)”에 담가 씻어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는 ‘책무(duty)’라는 단어에 도덕에서 끌어온 모든 내용을 채워 넣는다” (같은 책, 173쪽). 그러나 법규칙을 행위 기준들(standards of conduct)로 간주하는 구상은, 그것들을 도덕적 기준들과 동일시(identification)할 필요는 없다 (제5장 제2절 참조). Holmes가 ‘그가[나쁜 사람(the Bad Man)이] 어떤 일을 할 경우 불쾌한 결과를 겪게 될 것이라는 예언(prophecy)’으로 책무를 동일시한 데 대한 비판은 A. H. Campbell의 Frank 저서 Courts on Trial에 대한 서평, Modern Law Review 제13권(1950), 그리고 본서 제5장 제2절, 제7장 제2절과 제3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제1조 제8절(의회에 과세 권한을 부여하는 미국 헌법 조항)의 목적상 제재적-불이익(penalty)과 조세(tax)를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참조: Charles C. Steward Machine Co. v. Davis, 301 U.S. 548 (1937).

41쪽. 책무-담지자(duty-bearer)로서 그리고 사적 입법자(private legislator)로서의 개인. Kelsen의 법적 행위능력(legal capacity)과 사적 자율성(private autonomy) 논의와 비교하라 (General Theory, 90쪽, 136쪽).

42쪽. 입법자가 자신을 구속하는 입법(Legislation binding the legislator). 명령들(orders)과 사령들(commands)은 오직 타인에게만 적용된다는 전제에 기반하여 명법 이론(imperative theories of law)을 비판하는 논의는 Baier의 The Moral Point of View (1958), 136–139쪽을 참조하라. 그러나 일부 철학자들은 자기지향 사령(self-addressed command)이라는 관념을 수용하며, 이를 1인칭 도덕 판단(first-person moral judgments) 분석에도 사용한다. (Hare, The Language of Morals, 제11–12장에서 ‘Ought’ 논의 참조). 본문에서 입법과 약속의 유비를 제시한 부분은 Kelsen, General Theory, 36쪽도 함께 보라.

45쪽. 관습과 묵시적 사령(Custom and tacit commands). 본문에서 비판된 교설은 Austin의 것으로, The Province of Jurisprudence Determined, 제1강 30–33쪽 및 The Lectures, 제30강 참조. 묵시적 사령이라는 관념(notion of tacit command)을 사용하여 명법 이론과 조화되게 법의 여러 양태에 대한 인정(recognition)을 설명하는 시도는 Bentham의 ‘수용(adoption)’ 및 ‘수습(susception)’ 교설, Of Laws in General, 21쪽을 참조하라. 또한 Morison, ‘Some Myth about Positivism’, Yale Law Journal 제68권 (1958) 및 본서 제4장 제2절도 참고. 묵시적 사령이라는 관념에 대한 비판은 Gray, The Nature and Sources of the Law, §§ 193–199 참조.

49쪽. 명법 이론들과 제정법 해석(Imperative theories and statutory interpretation). 법들이 본질적으로 명령들(orders)이며, 따라서 입법자의 의지(will) 또는 의도의 표현이라는 교설은, 본 장에서 제기한 것 외에도 다양한 비판에 직면한다. 어떤 비판자들은, 이러한 교설이 제정법 해석(statutory interpretation)의 과업을 ‘입법자의 의도(the intention of the legislator)’를 찾는 것으로 보는 오도적인 구상(conception)에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이는 입법자가 복합적이고 인위적인 집단(body)일 경우, 그 의도의 증거를 찾거나 산출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뿐 아니라, “입법자의 의도”라는 표현 자체에 명확한 의미가 부여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관련 논의는 Hägerström, Inquiries into the Nature of Law and Morals, 제3장 74–97쪽 참조. 입법 의도라는 관념(idea)에 수반된 허구에 대해서는 Payne, ‘The Intention of the Legislature in the Interpretation of Statute’, Current Legal Problems (1956) 참조. 입법자의 ‘의지(will)’ 관념에 대한 논의는 Kelsen, General Theory, 33쪽도 함께 보라.

제3장 제3판 주석

27–32쪽. 권한부여 규칙들(Power conferring rules). Hart는 『벤담에 대한 에세이: 법리학과 정치이론』(Essays on Bentham: Jurisprudence and Political Theory, 옥스퍼드대 출판부, 1982) 제8장 “법적 권한들(Legal Powers)”에서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였다. 권한부여 규칙들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논의로는 Joseph Raz의 『실천적 이유와 규범(Practical Reason and Norms)』(제2판, 옥스퍼드대 출판부, 1990) 97–106쪽을 참조하라. 또한 Joseph Raz와 D. N. MacCormick 간의 「자발적 의무와 규범적 권한들」(‘Voluntary Obligation and Normative Powers’)에 대한 심포지엄도 참고할 것 (1972년 아리스토텔레스 학회 회보 보충판, 제46권, 59쪽). 공적 권한들(public powers)에 대해서는 G. H. Von Wright, 『규범과 행위(Norm and Action)』(Humanities Press, 1963) 제10장을 참조하고, 또한 Eugenio Bulygin, 「권능 규범들에 관하여」(On Norms of Competence) (1992) Law and Philosophy 제11권 201쪽도 참고할 수 있다.

32쪽. 법들의 분류법(Taxonomy of laws). 보다 세밀한 분류에 대해서는 A. M. Honoré의 「실질적 법들(Real Laws)」을 참조하라. 이 글은 P. M. S. Hacker와 J. Raz가 편집한 『법, 도덕, 그리고 사회(Law, Morality and Society)』에 수록되어 있다.

38–39쪽. 제재들과 법의 사회적 기능들(Sanctions and the social functions of law). Hans Oberdiek, 「법과 법체계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 제재와 강제의 역할」(The Role of Sanctions and Coercion in Understanding Law and Legal Systems) (1976) American Journal of Jurisprudence 제71권 21쪽 참조. Joseph Raz, 『실천적 이유와 규범』 157–162쪽, John Finnis, 『자연법과 자연권(Natural Law and Natural Rights)』 266–270쪽, Grant Lamond, 「강제와 법의 본성」(Coercion and the Nature of Law) (2001) Legal Theory 제7권 35쪽, Frederick Schauer, 「Austin이 결국 옳았는가?—법 이론에서 제재의 역할」(Was Austin Right After All? On the Role of Sanctions in a Theory of Law) (2010) Ratio Juris 제23권 1쪽도 참조할 것. 법이 강제를 ‘허가’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는 관념에 대해서는 Ronald Dworkin, 『법의 제국(Law’s Empire)』 제3장을 참조하라. 특히 92–94쪽을 주목할 것.

38–42쪽. ‘나쁜 사람’의 관점(The ‘bad man’s’ point of view). William Twining, 「‘나쁜 사람’ 다시 보기」(The Bad Man Revisited) (1972) Cornell Law Review 제58권 275쪽 참조. Stephen Perry는 Hart의 이론이 ‘나쁜 사람’의 관점을 주변화할 자원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논변한다. 그의 글 「Holmes 대 Hart: 법이론에서의 나쁜 사람」(Holmes versus Hart: The Bad Man in Legal Theory)은 Steven J. Burton 편, 『법의 길과 그 영향: 올리버 웬델 홈즈 주니어의 유산』(The Path of the Law and Its Influence: The Legacy of Oliver Wendell Holmes Jr.), 캠브리지대 출판부, 2000년에 수록되어 있다. 법을 전적으로 유인 수단(incentivizing device)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특히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지속되고 있다. 관련 저작으로는 Richard Posner의 『법경제학(Economic Analysis of Law)』(제8판, Aspen Publishers, 2010)과 『법리학의 문제들(The Problems of Jurisprudence)』(하버드대 출판부, 1990)이 있다. 가장 정교한 논의는 Lewis A. Kornhauser, 「법의 규범성」(The Normativity of Law) (1999) American Law and Economics Review 제1권 3쪽 참조.

44–49쪽. 법의 원천으로서의 관습(Custom as a source of law). John Gardner, 『신념의 도약으로서의 법(Law as a Leap of Faith)』 제3장 「법의 몇몇 유형들(Some Types of Law)」 참조. 또한 Amanda Perreau-Saussine과 James B. Murphy 편집, 『관습법의 본성: 법적·역사적·철학적 관점(The Nature of Customary Law: Legal, Histor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케임브리지대 출판부, 2007)의 수록 논문들도 참고할 것. Dworkin은 Hart가 그의 승인 규칙(rule of recognition) 교설과 일관되게 관습을 설명할 수 없다고 논변한다. 관련 논의는 Taking Rights Seriously, 41–44쪽 참조.

  1. Section 48 (1). 

  2. General Theory of Law and State, p. 63. 위 2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