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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이 책은 학생의 실패 장면에서 출발하지만, 그 실패의 원인을 단순히 학생 개인의 역량 문제에서 찾지 않는다. 나는 이 책에서, 좋은 글의 모범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학생 스스로 개선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가 존재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 강의실에서 학생들 대다수는 성실하게 쓰고도 그럴듯하게 실패한다. 배경을 쓴다고 하면서 쟁점과 거리가 먼 사회 분위기를 늘어놓고, 다양한 근거를 든다고 하면서 서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를 병렬로 쌓고, 반론을 다룬다고 하면서 실제 objection이 아니라 상대 입장 소개만 하고 끝낸다.
이 책이 겨냥하는 것은 바로 그 실패의 구조다. 학생이 무엇을 몰라서 실패했는지보다, 왜 그런 글이 우리 사회에서는 오히려 그럴듯하게 보이는지를 먼저 해부하고 싶었다. 특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실패들이 대개 노골적인 오해의 결과라기보다 여러 조언과 훈련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결과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정답을 제시하는 책”이기보다 “학생 글에 스며든 글쓰기 습관이 어디서 왔는지 밝히고, 그것을 하나씩 벗겨 내는 책”에 가깝다.
내가 보기에 이 실패들은 단지 학생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글쓰기를 무엇으로 가르치고, 어떤 글을 더 높이 평가해 왔는지를 보여 주는 증상이다. 입시와 면접에서는 제한된 시간 안에 내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얼마나 성실하고 균형 잡혀 보이는지 드러내는 글이 유리할 때가 많다. 토론대회와 발표 문화에서는 큰 쟁점을 다루고 여러 입장을 한 번씩 언급하는 태도가 성숙해 보이기 쉽다. 시중 논술 강의와 온라인 조언은 “다양한 근거를 넣어라”, “중복되지 않게 써라”, “반대 입장도 고려하라”, “결론은 독자에게 강하게 각인되게 써라” 같은 말을 반복한다. 때로는 학계의 관행도 자료량, 참고문헌의 폭, 선행연구의 길이에 먼저 눈길을 주면서 이런 인상을 강화한다.
실패 장면
학생은 짧은 시간 안에 써야 하는 논술 답안에서, 생물학적 이유 하나, 윤리학적 이유 하나, 사회적 함의 하나, 반대 입장 하나를 차례로 넣으면 “풍부한 글”이 된다고 배운다. 면접 답변에서는 한 입장을 끝까지 밀기보다 “양쪽 다 일리가 있지만 저는 중간쯤에서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편이 더 성숙해 보인다고 느낀다. 발표 수업에서는 쟁점을 정확히 좁히기보다 큰 사회문제를 먼저 환기하는 편이 더 무게 있어 보인다. 이런 장면들이 반복되면, 논증문에서도 같은 몸짓이 자연스럽게 재현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한 가지 글쓰기 감각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다. 글은 무엇보다도 “내가 많이 알고 있음”, “나는 균형 잡힌 사람임”, “나는 편향되지 않은 사람임”, “나는 실력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무대라는 감각이다. 그러면 근거가 많아 보이면 좋은 글이라고 믿게 되고, 서로 관련 없는 이유라도 많이 끌어오면 풍부해 보인다고 느끼게 된다. 실제 objection이 아니어도 반대 입장을 한번 언급하면 공정해 보이고, 끝에서 조금 물러서면 성숙해 보인다고 여긴다. 이 감각은 학생의 악의나 무지에서 곧바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장면에서 보상받아 온 글쓰기 습관이 무의식적으로 축적된 결과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논증문이 원래 맡아야 할 기능과 어긋난다. 논증문은 상대와의 관계를 연출하는 장르가 아니라, 하나의 결론이 왜 따라나와야 하는지를 구조적으로 입증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원래 논증문은 나를 전시하는 장르가 아니다. 논증문은 지식과 판단에 기여하는 장르다. 이미 있는 쟁점 속에서 무엇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지 밝히고, 하나의 논제를 세우고, 그 논제를 지지하는 전제를 입증하고, 예상되는 objection을 처리함으로써, 독자가 이전보다 더 정교한 판단에 도달하게 만드는 장르다. 즉 논증문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글이 아니라, “무엇이 참에 더 가까운가”, “어떤 판단이 더 정당한가”를 밀어 올리는 글이어야 한다.
물론 논증문은 더 넓은 탐색과 숙고의 과정 속에서 쓰인다. 실제 논의와 토론의 장에서는 더 나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입장을 수정하거나 조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논증문 자체의 기능은 다르다. 논증문은 그 탐색이 끝난 뒤, 내가 최종적으로 옹호하려는 논증을 가장 엄밀하게 구성해 독자에게 전달하는 장르다. 따라서 논증문 안에서 필요한 것은 절충의 몸짓이 아니라, 전제의 입증과 objection의 처리, 그리고 결론의 도출이다. “반대 입장을 한번 소개하고 중간 정도로 물러서는 글”이 성숙해 보일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 좋은 논증문이 되지는 않는다.
나는 바로 이 무의식적 미끄러짐을 교정하고자 한다. 논증문은 대화의 녹취록이 아니다. 민주적 태도를 연출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수렴하거나 절충하는 문서도 아니다. 또 배경지식을 자랑하고 많이 검토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입시나 구직을 위한 증빙서류도, 망라적인 리서치가 덕목이 될 수 있는 보고서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쟁점에 대해, 왜 이 결론이 따라나와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구조적 작업이다.
그래서 이 책은 실패 자체보다 먼저, 그 실패를 낳은 배경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왜 학생이 본론에서 무작위로 이유나 근거들을 병렬적으로 나열하게 되는지, 왜 반론에서 실제 objection 대신 공정성의 몸짓을 반복하는지, 왜 서론에서 엉뚱한 배경을 쓰고 결론에서 과잉 함의로 비약하는지를 먼저 설명하지 않고서는, 좋은 논증문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말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전체 구성도 그에 맞추어 다시 설계했다. 먼저 우리 사회가 어떤 글쓰기를 보상해 왔는지, 그 결과 학생 글에 어떤 습성이 배었는지 보여 준다. 그다음 논제의 엄정함, 요약의 구조 읽기, 쟁점과 딜레마의 발견으로 올라간다. 그 뒤에는 책의 중심부로서 본론 실패를 다룬다. 왜 학생 본론은 병렬 나열이 되는가, 왜 반론은 반론이 아닌 경우가 많은가, 왜 결론은 자꾸 비약하는가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후에야 추론 유형, 반론, 리서치, 장문 설계와 실전 시트로 확장한다.
특히 한국의 강의실에서는 가장 기초적인 용어 구별부터 자주 무너진다. 학생들은 주제와 논제를 섞어 쓰고, 논제를 다시 막연한 의견이나 생각과 혼동한다.1 그래서 나는 실제 강의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무엇에 대해 쓰는가와 무엇을 주장하는가, 참거짓의 평가가 가능한 내용과 그것을 담는 문장을 하나씩 구별하게 만든다. 이 책의 2장이 비교적 천천히 시작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덧붙여 둘 필요가 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학생들은 종종 IMRaD 같은 학술 형식을 먼저 배운다.2 물론 그런 형식은 실제 연구 보고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형식의 칸을 식별하고 내용을 배분하는 능력과, 고유한 논제와 논증을 실제로 세우는 능력은 다르다. 이 책이 하려는 일은 후자에 더 가깝다.3 그래서 이 책은 형식의 이름을 외우게 하기보다, 짧은 5-6단락 에세이에서조차 작은 lemma들과 최종 theorem의 관계가 드러나는 구조를 실제로 연습하게 만드는 데 더 큰 비중을 둔다.
즉 이 책의 핵심은 단순한 친절함이 아니다. 실패를 전면화함으로써, 학생이 자기 글의 붕괴 지점을 구조적으로 보게 만드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 붕괴가 단지 개인적 서툼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담론 구조의 산물이라는 점까지 보게 만드는 것이다. 좋은 글은 대개 멋진 문장보다 먼저, 실패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좋은 공론장 역시, 좋은 논증문을 쓰는 법을 배우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학생들이 반복하여 같은 방식으로 실패한다면, 성찰의 대상은 학생에게만 머물 수 없다. 면접관과 평가자는 무엇을 좋은 글의 징표로 간주해 왔는지 다시 물어야 한다. 토론 교육자와 대회 운영자 역시 승부와 인상 관리의 기술만이 아니라, 상호 존중의 원칙이 기계적 중립의 규범으로 오해되어 충분한 논증을 통한 결론 형성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함께 성찰해야 한다. 공적 담론과 학계에서 발언의 무게를 좌우하는 이들 또한 자료량, 자세, 균형의 제스처보다 논증의 구조와 기여를 더 엄밀하게 판별할 책임이 있다. 이 책은 주로 학생들의 글쓰기를 교정하고 돕기 위해 쓰였지만, 동시에 학생들과 우리 사회 대부분이 그러한 방식으로 글을 쓰게 만든 제도와 문화에 책임을 묻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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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표현을 접하면 혼동은 더 커진다.
topic,thesis,proposition,sentence는 서로 다른 층위의 말인데, 현장에서는 이것들이 한꺼번에 뭉개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한국어논제를 언제나 영어thesis에만 고정해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논증문 교육의 맥락에서는무엇에 대해 쓰는가와무엇을 옹호하는가를 갈라 이해할 필요가 있고, 특히 후자를thesis statement에 가까운 감각으로 붙잡지 못하면 글은 곧장 흐려진다. ↩ -
IMRaD는 통상
Introduction,Methods,Results,Discussion의 약어로 이해된다. 분야와 저널에 따라Results and Discussion을 함께 두거나 변형된 배치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 ↩ -
이 구별을 굳이 강조하는 데에는 교육 현장의 사정도 있다. 특히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계열 대학이나 학과는 기초 글쓰기 교과목에 대해 종종 IMRaD 형식의 식별, 항목별 요건 충족, 연구보고서의 외형적 배치 같은 요구를 강하게 제시한다. 그런 요구 자체가 부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많은 학생은 학계에 진입하면서 그런 형식을 읽고 써야 한다. 다만 IMRaD 글쓰기에서는 논증의 상당 부분이 방법론의 정당화, 결과의 제시, 기존 이론과의 접속, 해당 분야의 축적된 관행 속에 분산되어 작동한다. 그래서 초보자에게는
논증이 실제로 어디서 서는지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서비스 교과목 수준의 글쓰기 교육이 그 요구에만 끌려가면, 학생은 보고서의 칸을 채우는 법은 배워도 자기 논제와 논증을 세우는 법은 배우지 못할 수 있다. 내가 이 책에서 형식과 논증을 반복해서 구별하는 이유는, IMRaD 교육을 부정하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이 실제로 필요한 자리를 인정하면서도, 그 교육이 논증 훈련 전체를 대체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방어적으로, 또 의식적으로 밝혀 둘 필요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