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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연역, 귀납, 가설유도, 유비

학생이 반론을 잘못 다루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기가 무슨 종류의 추론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구조를 보지 못하면 비판도 늘 엇나가고, 그러면 논증문은 쉽게 태도 표명이나 인상 경쟁으로 다시 무너진다. 이 장은 바로 그 지점에서, 왜 구조 감각이 공론장과 학문 모두에 필요한지 설명하는 이론적 연결부다.

1. 연역

연역은 가장 엄격한 형태의 추론이다. 전제들이 참이라면 결론도 반드시 참이어야 한다. 그래서 연역 논증을 평가할 때 우리는 보통 타당성과 건전성을 구분한다.

  • 타당성: 전제가 참일 때 결론이 따라 나오는가
  • 건전성: 전제가 실제로도 참인가

연역의 장점은 명료함이다. 논리적 비약이 있으면 바로 드러난다. 그러나 약점도 있다. 전제가 빈약하면, 아무리 형식이 단정해도 결론은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연결전제: 전제와 결론 사이의 다리

연역 논증을 분석할 때 자주 드러나는 것이 연결전제다. 연결전제는 어떤 근거가 왜 결론을 지지하는지를 허가하는 명제다. 흔히 숨은 전제, 암묵 전제, 또는 warrant라고 부르는 것과 가깝다. 학생 글에서는 이 전제가 생략되어 있어서, 전제들은 그럴듯한데 결론이 갑자기 강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다음 주장을 보자.

  • 대중교통은 친환경적이다.
  • 그러므로 도시는 대중교통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이 논증은 겉으로는 간단하지만, 전제와 결론 사이에는 하나의 연결전제가 필요하다.

  • 연결전제: 도시는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이 전제를 넣으면 구조는 더 분명해진다. 전제 1은 대중교통이 어떤 성질을 갖는지 말하고, 연결전제는 그런 성질을 가진 대상에 도시가 어떤 규범적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말한다. 연결전제를 드러내는 일은 연역적 타당성을 해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전제에서 결론으로 가는 길을 명시하여, 논증이 타당한지와 전제가 건전한지를 더 엄격하게 평가하게 만든다.

다만 아무 문장이나 연결전제로 넣어서는 안 된다. P이면 C다처럼 결론을 되풀이하는 문장을 임시로 붙이면 형식은 타당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 논증 부담은 해결되지 않는다. 좋은 연결전제는 독립적으로 방어 가능해야 하고, 결론을 반복하지 않아야 하며, 원문이 감당하는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

개념 우회: 라벨이 연결전제를 대신할 때

학생 글에서 더 미묘한 문제는 연결전제가 완전히 빠지는 것이 아니라, 연결전제의 자리에 전문 용어가 대신 들어오는 경우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은 이민정책 논증에서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 국가는 자국민에 대해 작위의무를 진다.
  • 국가는 외부인에 대해 부작위의무만 진다.
  • 그러므로 자국민 보호를 위한 선별적 이민 수용은 정당하다.

여기서 작위의무부작위의무라는 말은 분명 어떤 구별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 구별만으로 의무의 강도나 우선순위가 곧바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작위와 부작위는 우선 행위 방식의 구별이다.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가, 어떤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하는가의 차이다. 그런데 행위 방식의 차이가 곧 의무 강도의 차이라는 결론은 별도로 논증되어야 한다. 부작위의무도 매우 강할 수 있다. 국가는 시민의 표현의 자유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아야 하며, 이런 소극적 의무는 결코 약한 의무가 아니다.

따라서 위 논증에서 실제로 필요한 연결전제는 이런 문장에 더 가깝다.

  • 국가는 사회계약의 상대방인 자국민에 대해, 외부인보다 더 강한 보호의무를 진다.

이 문장은 작위/부작위라는 기술적 구별보다 훨씬 더 논쟁적이다. 바로 그래서 이 문장을 숨기면 안 된다. 학생이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이 작위의무라서 강하다가 아니라 자국민이라는 관계 때문에 강하다라면, 그 관계적 근거를 직접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문 용어가 판단의 부담을 대신 짊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이런 현상을 개념 우회라고 부를 수 있다. 개념 우회는 학생이 직접 방어하기 부담스러운 판단을 더 중립적이고 학술적으로 보이는 용어로 바꾸어 제시하는 패턴이다. 혐오표현 논증에서는 offenseharm의 구별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영화 폭력 논증에서는 쾌락, 대상화, 도구화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섹스로봇 논증에서는 상호작용성, 자동성, 복종형 설계 같은 말이 연결전제의 부담을 가릴 수 있다. 이 말들은 모두 유용한 개념이지만, 개념이 결론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글쓰기 교육의 관점에서 이 문제는 학생의 무성의라기보다 학문 담화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전형적 현상이다. Bartholomae가 말하듯 대학 글쓰기는 학생이 아직 완전히 소유하지 못한 학문 공동체의 언어를 빌려 쓰는 과정이다.1 Meyer와 Land가 말한 문턱 개념과 troublesome knowledge의 관점에서도, 학생은 새 개념이 자기 사고방식을 바꾸기 전의 어중간한 상태에서 그 개념을 모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2 Perkins가 말한 ritual knowledge나 inert knowledge도 이 현상을 설명한다. 학생은 용어를 말할 줄 알지만, 그 용어가 실제 문제 해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아직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다.3

이 현상은 학생 글쓰기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전문어는 엄밀한 사고의 도구이지만, 동시에 권위와 지식인 정체성을 표시하는 상징자본이 될 수 있다. Bourdieu가 언어를 권력의 매체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학문적 용어는 누가 더 전문적으로 보이는지, 어떤 담론이 더 권위 있게 들리는지를 조직한다.4 그러므로 공적 지식인이나 전문가 담론에서도 전문어가 실제 분석을 수행하지 않고 연결전제를 대신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다만 학생의 경우에는 발달적 모방과 문턱 개념 앞의 불안정성이 크고, 식자층 담화의 경우에는 과시, 부풀림, 제도적 검산 실패가 섞일 수 있으므로 둘을 곧바로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교수자가 던질 질문은 단순히 “이 용어의 정의가 맞는가”가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 이 용어는 대상을 분류하는가, 아니면 결론을 정당화하는가.
  • 이 분류가 참이라고 해도 결론이 바로 따라오는가.
  • 이 용어가 없다면 학생이 실제로 말해야 할 연결전제는 무엇인가.
  • 그 연결전제는 독립적으로 방어 가능한가.

이 질문을 통과하면 학생의 글은 더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담백해진다. 좋은 논증문은 어려운 용어가 많은 글이 아니라, 어려운 판단을 숨기지 않는 글이다.

이때 교수자의 질문 방식은 소크라테스적 엘렌쿠스와 무관하지 않다. 고전적 엘렌쿠스는 대화 상대가 이미 받아들이는 명제들을 질문으로 검토하여, 그 명제들이 실제로 결론을 지탱하는지 드러내는 방식이다.5 글쓰기 수업에서 이것은 학생을 논파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학생이 자기 논증의 숨은 전제를 스스로 말하게 하는 교육적 문답이 된다. 예를 들어 작위의무라서 우선한다는 학생에게 정말 작위라서인가, 아니면 사회계약의 상대방인 자국민에 대한 특수 의무 때문인가를 묻는다. 혐오표현은 공론장을 해친다는 학생에게는 그 방해가 국가 간섭을 정당화할 harm인가를 묻고, 영화 폭력은 쾌락을 준다는 학생에게는 쾌락 자체가 문제인가, 타인의 고통을 감정적 효과의 재료로 삼는 구조가 문제인가를 묻는다. 이런 질문은 학생이 흉내 낸 전문어를 버리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전문어가 자기 논증에서 실제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소유하게 하려는 것이다.6

2. 귀납

귀납은 여러 사례를 통해 일반적 결론을 이끌어 낸다. 과학적 탐구와 경험적 연구에서 매우 흔하다. 그러나 귀납은 필연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검은 백조 하나가 수많은 흰 백조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귀납은 현실의 필수 도구다. 우리는 모든 사실을 연역으로만 알 수 없다. 따라서 좋은 귀납 논증은 표본의 충분성, 방법론의 적절성, 반례의 처리, 대안 설명의 배제를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3. 가설유도

가설유도는 이미 주어진 자료를 어떻게 가장 잘 설명할지를 묻는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창의성의 논리와도 맞닿아 있다. 자료를 보며 모두가 같은 가설을 떠올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7

가설유도는 흔히 다음 질문을 따른다.

  • 이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하는 가설은 무엇인가.
  • 경쟁 가설보다 더 적은 가정으로 더 많은 사실을 설명하는가.

좋은 연구자는 자료를 모으는 사람일 뿐 아니라, 설명의 형식을 발명하는 사람이다.

4. 유비

유비는 두 대상의 유사성을 근거로 다른 속성의 유사성까지 추론하는 방식이다. 유비는 섣부르면 허술하지만, 잘 쓰이면 매우 강력하다. 특히 새로운 개념을 이해시키거나 제도 간 구조적 유사성을 드러낼 때 유용하다.

그러나 좋은 유비는 모든 유사성에 기대지 않는다. 결론과 관련된 유사성만이 중요하다. 닭과 오리가 모두 날개를 가졌다고 해서, 모든 해부학적 성질이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 문제인가

오늘날 공적 담론에서는 서로 다른 종류의 추론이 뒤섞인 채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귀납적으로 말해 놓고 연역처럼 확신하고, 유추를 사용해 놓고 단순한 사례처럼 처리하며, 경쟁 설명이 필요한 문제를 직관으로 밀어붙인다. 이런 환경에서는 비판도 정확한 자리를 겨누지 못한다. 따라서 추론 유형을 구별하는 감각은 단지 학술적 엄밀함의 문제가 아니라, 비판이 실제로 무엇을 공격해야 하는지를 판별하는 기초 감각이다.

5. 추론 유형을 알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이 책의 중요한 통찰 가운데 하나는, 반론의 방식도 추론 유형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 연역 논증에는 전제나 타당성을 공격해야 한다.
  • 귀납 논증에는 반례, 표본 편향, 성급한 일반화를 지적해야 한다.
  • 가설유도에는 더 나은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
  • 유비 논증에는 결론과 관련된 유사성이 약하다는 점을 보여 주어야 한다.

즉 원래의 논증이 무엇인지 모르면, 반론도 빗나가게 된다.

6. 실전 감각

예컨대 기후 변화 대응에는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는 논증은 여러 추론이 섞일 수 있다.

  • 외부효과 개념을 통한 연역적 구조
  • 정책 사례 비교를 통한 귀납적 보강
  • 정부 규제가 없는 상황보다 있는 상황이 더 나은 설명을 제공한다는 가설유도

좋은 글은 종종 한 가지 추론만이 아니라 여러 추론을 조합한다. 다만 그때도 각 단계가 어떤 형식으로 움직이는지 필자는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8

장 끝 연습

아래 주장 각각에 가장 적절한 추론 유형을 붙여 보라.

  1. 모든 사람은 죽고,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2. 수많은 사례에서 같은 결과가 나왔으므로 이 정책은 대체로 효과적이다.
  3. 이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플랫폼의 배열 알고리즘이다.
  4. 감옥의 감시 구조와 학교의 출결 통제가 제도적으로 유사하다.
  5. 대중교통은 친환경적이므로 도시는 대중교통에 더 투자해야 한다에서 필요한 연결전제를 찾아 보라.
  1. David Bartholomae, “Inventing the University,” Journal of Basic Writing 5, no. 1 (1986): 4-23, https://doi.org/10.37514/JBW-J.1986.5.1.02. 

  2. Jan H. F. Meyer and Ray Land, “Threshold Concepts and Troublesome Knowledge (2): Epistemological Considerations and a Conceptual Framework for Teaching and Learning,” Higher Education 49, no. 3 (2005): 373-388, https://doi.org/10.1007/s10734-004-6779-5. 

  3. David Perkins, “The Many Faces of Constructivism,” Educational Leadership 57, no. 3 (1999): 6-11. 

  4. Pierre Bourdieu, Language and Symbolic Power, ed. John B. Thompson, trans. Gino Raymond and Matthew Adamso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91). 

  5. Gregory Vlastos, “The Socratic Elenchus,” Oxford Studies in Ancient Philosophy 1 (1983): 27-58; Gregory Vlastos, Socratic Studies, ed. Myles Burnyeat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https://doi.org/10.1017/CBO9780511518515. 

  6. Hugh H. Benson, Socratic Wisdom: The Model of Knowledge in Plato’s Early Dialogue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https://doi.org/10.1093/oso/9780195129182.001.0001. 

  7. 가설유도는 퍼어스 이래로 설명의 논리와 창의적 발견의 형식으로 자주 이해되어 왔다. 다만 실제 연구에서는 귀납적 일반화나 개념 분석과 뒤섞여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단일한 순수 형식으로만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8. 이 장은 교육적 명료성을 위해 추론 유형을 구분하지만, 실제 학술 논문은 종종 여러 추론을 겹쳐 사용한다. 그러므로 여기의 분류는 분류 자체를 위한 이론이라기보다, 반론의 자리를 더 정확히 겨누기 위한 실천적 도구로 이해하는 편이 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