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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학생은 왜 그럴듯하게 실패하는가
이 장은 이 책 전체의 진입점이다. 그러나 여기서 곧바로 학생의 실패를 나열하려는 것은 아니다. 먼저 묻고 싶은 것은, 왜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글이 오히려 그럴듯하게 보이는가이다. 좋은 논증문의 원리를 먼저 설명하기보다는, 학생 글을 둘러싼 사회적 배경과 그 배경이 남긴 습성부터 보여 준다. 이유는 단순하다. 학생들은 대개 “논증을 전혀 안 해서” 실패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조언을 성실하게 따르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습관이 실제로는 구조를 무너뜨린다는 점을 인식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1. 우리 사회는 어떤 글쓰기를 보상해 왔는가
학생들이 대학에 오기 전부터 자주 배우는 글쓰기에는 몇 가지 공통된 기대가 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아는 것을 많이 보여 주어야 하고, 여러 관점을 고려했다는 인상을 주어야 하며, 편향되지 않고 성실한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는 기대다. 입시 논술, 면접 답변, 토론대회, 발표 수업, 시중 논술 강의, 온라인 글쓰기 조언은 형태는 달라도 비슷한 메시지를 반복한다.
- 다양한 근거를 넣어라.
- 중복되지 않게 써라.
- 반대 입장도 고려하라.
- 결론은 독자에게 강하게 각인되게 써라.
- 균형 있고 공정해 보이게 써라.
이 조언들은 각 장면에서는 부분적으로 유효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기준이 논증문에도 거의 그대로 옮겨질 때다. 그러면 학생은 무엇이 참인가를 더 잘 가리는 글보다 필자가 어떤 사람처럼 보이는가를 잘 관리하는 글을 먼저 배우게 된다.
왜 문제인가
가령 시험장에서 학생은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내 주장만 쓰면 편협해 보일 수 있으니 다른 입장도 한 번 넣자.” “같은 종류의 이유만 계속 쓰면 단조로우니 생물학, 윤리학, 사회학을 한 단락씩 나누자.” “마지막 문장은 평가자에게 강하게 남아야 하니 세게 끝내자.” 이런 판단은 대개 의식적인 이론이라기보다, 그동안 좋은 답안처럼 보였던 글의 표정을 몸으로 익힌 결과에 가깝다.
2. 그 결과 학생 글에 어떤 습성이 배는가
이런 배경 속에서 학생 글에는 몇 가지 습성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것은 대개 노골적인 오해의 결과가 아니다. 여러 조언을 성실하게 따르다 보니, 논증문도 원래 그런 식으로 써야 하는 장르처럼 몸에 배는 것이다.
첫째, 논증문을 지식과 판단에 기여하는 글보다, 자신이 많이 알고 있고 균형 잡히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기는 글처럼 다루게 된다.
둘째, 논증의 구조보다 글의 외양 쪽으로 시선이 더 쉽게 끌린다. 그래서 매끄러운 문장, 다양한 이유, 공정해 보이는 태도,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는 결론을 갖추면 논증도 성립했다고 느끼기 쉽다.
셋째, 논증문을 이미 정리한 논증을 엄밀하게 제시하는 장르로 보기보다, 여러 입장을 한 번씩 언급하고 적당히 수렴하는 장르처럼 다루게 된다. 그래서 objection을 처리하기보다 상대 입장을 소개하고, 재반박하기보다 중간에서 물러서는 쪽으로 흐르기 쉽다.
이 습성들은 따로 놀지 않는다. 대개는 함께 묶여 나타난다. 학생은 문장을 매끄럽게 쓰고, 이유를 많이 넣고, 반대 의견도 한 번 언급하고, 마지막에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는 결론으로 닫는다. 그래서 본인도 “꽤 잘 썼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보면 전제는 입증되지 않았고, objection은 처리되지 않았으며, 결론은 앞의 문장들로부터 따라나오지 않는다.
3. 그래서 실패는 왜 그렇게 성실해 보이는가
그래서 학생 글의 실패는 대개 성실한 얼굴을 하고 온다. 근거가 많아 보이고, 반대 의견도 한번 다루고, 사회적 맥락도 언급하고, 결론도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며 끝낸다. 바로 그런 요소들이 그동안 좋은 글의 표지처럼 반복해서 제시되어 왔기 때문이다.
실패 장면
실제로 학생 초고를 읽어 보면 이런 식의 문장이 자주 나온다. 첫 단락에서는 “사회적으로 낙태 문제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하고, 다음 단락에서는 “생명은 소중하다”고 말하고, 그다음 단락에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도 중요하다”고 말한 뒤, 마지막에서 “따라서 낙태는 금지하거나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닫는다. 표면적으로는 많은 것을 검토한 글처럼 보이지만, 독자는 여전히 묻게 된다. 태아가 사람이라는 전제가 필요한지, 생명의 가치가 왜 여기서 절대적으로 우선하는지, 여성의 자기결정권 이야기는 왜 지금 반론이 되는지, 아무 것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읽고 나면 독자는 여전히 묻는다. “그래서 왜 이 결론이 나와야 하지?” 이 질문이 남아 있다면, 그 글은 여러 문장을 썼더라도 아직 논증문이 아니다. 외양은 그럴듯하지만 구조는 비어 있기 때문이다.
4. 학생의 실패는 사회적 실패의 축소판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학생 글쓰기의 실패는 공론장의 실패와 닮아 있다. 공적 담론에서도 우리는 종종 다음과 같은 장면을 본다.
- 실제 쟁점 대신 주변 맥락만 길게 설명하는 담론
- 서로 연결되지 않는 정보와 통계를 쏟아놓는 담론
- 반론을 실제 비판이 아니라 “상대편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정도로 소비하는 담론
- 논증되지 않은 함의와 정책 결론이 근거보다 앞질러 확장되는 담론
그러므로 학생 글을 고치는 일은 단지 학점을 올리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무엇을 좋은 비판이라고 생각하고, 무엇을 진지한 판단이라고 부를 것인지에 대한 훈련과 연결된다. 학생 글은 공론장과 학계 담론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5. 논증문은 원래 무엇을 위한 글인가
이 책의 기본 명제는 다음과 같다.
학생 글은 대개 생각이 없어서 실패하지 않는다.
생각이 구조로 바뀌지 못해서 실패한다.
여기에 덧붙여, 나는 다음도 함께 말하고 싶다.
논증문은 원래 나를 드러내기 위한 글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쟁점에서 지식과 판단에 기여하기 위한 글이다.
즉 논증문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자기 연출의 장르가 아니라, “왜 이 결론이 더 낫고 더 정당한가”를 보여주는 구조적 장르다. 이 책의 나머지 장들은 모두 이 점을 조금씩 다른 위치에서 다시 설명한다. 논제 장은 무엇을 증명할 것인지 좁히는 법을, 요약 장은 기존 논증의 구조를 읽는 법을, 본론 장은 전제를 입증하는 법을, 반론 장은 objection을 처리하는 법을, 결론 장은 도출된 범위를 넘지 않는 법을 가르친다. 다시 말해, 이 책은 학생의 실수를 지적하는 책이기보다 그 실수를 낳은 환경을 넘어서는 법을 가르치는 책이다.
6. 이 책의 독서 경로
이 책은 다음과 같은 경로를 따른다.
- 학생 실패의 전형을 본다.
- 논제를 엄정하게 세우는 법을 배운다.
- 요약과 쟁점 읽기를 통해 논증의 지도를 본다.
- 본론이 왜 무너지는지 해부한다.
- 서론과 결론, 반론과 추론 유형을 기능적으로 다시 배운다.
- 마지막으로 장문 설계와 실전 시트로 확장한다.
좋은 논증문은 멋진 출발보다 정확한 자기 진단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이 책의 첫 장은 모범이 아니라 실패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