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개념 우회와 연결전제

논증문에서 학생들이 자주 하는 실수 가운데 하나는, 논쟁적인 판단을 직접 말하지 않고 더 학술적으로 보이는 개념으로 우회하는 것이다. 예컨대 “자국민에 대한 의무가 외부인에 대한 의무보다 우선한다”라고 직접 말하기 부담스러우면, “자국민 보호는 작위의무이고 외부인 보호는 부작위의무이므로 전자가 우선한다”라고 쓴다. 겉으로는 더 전문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판단의 부담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말 속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런 현상을 여기서는 개념 우회라고 부르겠다. 개념 우회는 단순한 용어 오해가 아니다. 학생은 새로 배운 개념을 사용해 논증을 더 엄밀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개념이 대상을 분류하는 말인지, 결론을 정당화하는 원칙인지 구별하지 못하면, 용어가 연결전제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

1. 개념은 결론을 대신하지 않는다

다음 문장을 보자.

외부인에 대한 국가의 의무는 부작위의무이고, 자국민에 대한 보호의무는 작위의무이므로, 자국민 보호의무가 우선한다.

이 문장에서 작위의무부작위의무라는 말은 일정한 구별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 구별만으로 의무의 강도나 우선순위가 바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부작위의무도 매우 강할 수 있다. 예컨대 국가는 시민의 표현·양심·신체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소극적 의무에 가깝지만, 약한 의무라고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문장에 필요한 연결전제는 따로 있다.

국가는 사회계약의 상대방인 자국민에 대해 외부인보다 더 강한 보호의무를 진다.

이 전제가 논쟁의 핵심이다. 작위/부작위라는 라벨은 그 핵심을 대신 증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학생은 이 전제를 직접 말해야 한다. 그래야 독자는 “왜 자국민에 대한 특수 의무가 외부인에 대한 보편적 의무보다 우선하는가”를 평가할 수 있다.

Toulmin의 논증 모형으로 말하면, 학생은 data에서 claim으로 가는 길을 허가하는 warrant를 제시해야 한다.1 그런데 개념 우회가 일어나면, 학생은 warrant를 쓰는 대신 전문 용어를 전제에 붙인다. 그 결과 논증은 형식상 그럴듯해지지만, 실제 정당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2. 학생은 왜 우회하는가

개념 우회는 학생 개인의 성실성 부족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글쓰기 교육의 관점에서는 적어도 네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학생은 학문 담화에 진입하는 중이다. Bartholomae가 말하듯, 대학 글쓰기는 학생이 아직 완전히 소유하지 못한 학문 공동체의 언어를 빌려 쓰는 과정이다.2 이 과정에서 학생은 전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그래서 판단을 직접 말하기보다, 더 학술적으로 들리는 용어를 앞세운다.

둘째, 학생은 문턱 개념 앞에서 머뭇거린다. Meyer와 Land는 어떤 개념들이 한 번 통과하면 사고방식을 바꾸지만, 그 전에는 학생에게 낯설고 불편한 지식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3 “국가가 누구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해악과 불쾌감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대상화는 왜 규제 근거가 되는가” 같은 질문은 바로 그런 문턱에 가깝다.

셋째, 학생은 절차를 수행하는 데 성공하면서도 실제 논증에는 실패할 수 있다. Bloome, Puro, Theodorou가 말한 procedural display는 학생이 수업에서 요구되는 절차를 보여주지만, 그것이 곧 내용 이해나 능력 획득과 같지는 않다는 점을 잘 설명한다.4 전제 번호를 붙이고, 반론과 재반박을 쓰고, 학자 이름을 넣었다고 해서 실제 논쟁이 생긴 것은 아니다.

넷째, 학생은 지식을 변형하기보다 나열하는 단계에 머물 수 있다. Bereiter와 Scardamalia가 구별한 knowledge telling과 knowledge transforming의 차이를 떠올릴 수 있다.5 개념 우회는 종종 학생이 알고 있는 개념을 말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개념을 자기 논증의 구조 안에서 변형해 쓰는 데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을 때 나타난다.

다섯째, 이 현상은 학생 글쓰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전문어는 지적 엄밀성의 도구이지만, 동시에 권위와 지식인 정체성을 표시하는 상징자본이 될 수도 있다. Bourdieu가 언어를 권력의 매체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학문적 용어는 누가 말할 자격이 있는지, 누가 더 전문적으로 보이는지, 어떤 담론이 더 권위 있게 들리는지를 조직한다.6 그러므로 공적 지식인이나 전문가 담론에서도 전문어가 실제 분석을 수행하지 않고 warrant를 대신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다만 학생의 경우에는 발달적 모방일 수 있고, 식자층 담화의 경우에는 과시, 부풀림, 제도적 검산 실패가 섞일 수 있으므로 둘을 곧바로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3. 대표 사례

이민정책 사례에서 학생은 선별적 이민 수용을 정당화하기 위해 작위의무와 부작위의무를 구별했다. 그러나 실제 논쟁은 작위/부작위라는 행위 형식이 아니라, 국가가 자국민에게 지는 특수 의무와 외부인에게 지는 보편 의무의 관계에 있었다. 이 경우 코멘트의 핵심은 “부작위의무가 약하다고 단정하지 말라”가 아니라,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사회계약과 정치공동체 구성원성이라면 그것을 직접 전제로 세우라”이다.

혐오표현 사례에서는 존엄, 평등, 공론장, harm 같은 말이 쉽게 섞인다. 하지만 혐오표현 규제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불쾌한 표현인가가 아니라, 국가 간섭을 정당화할 정도의 harm이 있는가이다. Waldron식 논의에서도 핵심은 존엄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니라, 동등한 시민적 지위의 훼손이 harm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이다. 여기서도 학생은 “해악이다”라고 이름 붙이는 데서 멈추지 말고, 왜 그것이 offense가 아니라 harm인지 보여주어야 한다.

영화 폭력-대상화 사례에서는 쾌락이라는 말이 우회 지점이 된다. “영화 속 폭력이 쾌락을 준다”는 말만으로는 부정적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공리주의나 쾌락주의 전통에서는 쾌락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문제는 타인의 고통을 나의 감정적 효과와 쾌락의 재료로 소비하는 구조다. 따라서 논제는 “쾌락이 발생한다”가 아니라 “피해자의 고통이 인격적 고통이 아니라 감정적 효과의 재료로 전환된다”로 좁혀야 한다.

4. 코멘트의 표준 질문

개념 우회가 의심될 때 교수자는 다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1. 이 용어는 대상을 분류하는가, 아니면 결론을 정당화하는가.
  2. 이 분류가 참이라고 해도 결론이 바로 따라오는가.
  3. 학생이 실제로 말하고 싶은 판단은 무엇인가.
  4. 그 판단을 연결전제로 직접 쓰면 어떤 반론이 가능한가.
  5. 현재 결론은 그 연결전제가 감당할 수 있는 강도인가.

이 질문들은 학생을 더 어려운 말로 밀어 넣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학생이 전문어 뒤에 숨어 있던 자기 생각을 더 담백하고 책임 있게 말하도록 돕기 위한 질문이다.

5. 엘렌쿠스적 피드백

이 코멘트 방식은 소크라테스적 엘렌쿠스와도 닮아 있다. 고전적 엘렌쿠스는 대화 상대가 이미 받아들이는 명제들을 질문으로 검토하여, 그 명제들이 실제로 서로 양립하는지 또는 애초의 결론을 지탱하는지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7 Benson이 플라톤 초기 대화편의 엘렌코스를 인식론적 방법으로 읽는 것도 이 점과 연결된다.8

다만 수업에서의 목표는 학생을 논파하는 것이 아니다. 교수자는 학생에게 “왜 이 말이 당신의 결론을 강하게 만드는가”를 묻고, 학생이 스스로 더 직접적인 연결전제를 말하게 한다. 학생이 “작위의무라서 우선합니다”라고 말하면, 교수자는 “정말 작위라서인가요, 아니면 사회계약의 상대방인 자국민에 대한 특수 의무 때문인가요”라고 되묻는다. 학생이 결국 “국가는 사회계약 때문에 자국민에게 더 강한 의무를 진다”라고 말하면, 바로 그 문장이 논증의 핵심 전제가 된다.

이 방식은 이민정책 사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혐오표현 글에서는 “공론장에 나쁘다”가 아니라 “국가 간섭을 정당화할 harm인가”를 스스로 말하게 한다. 영화 폭력 글에서는 “쾌락을 준다”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감정적 효과의 재료로 소비하게 한다”를 말하게 한다. 가짜뉴스 글에서는 “개념이 불명확하다”가 아니라 “정부가 진실 판정자가 되는 구조가 왜 남용과 위축효과를 낳는가”를 말하게 한다. 섹스로봇 글에서는 “대상화다”라는 라벨이 아니라, 어떤 설계 특성이 어떤 대상화 효과를 만드는지 말하게 한다.

따라서 이 피드백의 교육적 효과는 네 가지다. 첫째, 학생은 자기가 실제로 의존하는 전제를 발견한다. 둘째, 전문어를 소유하지 못한 채 흉내 내는 상태에서 벗어나, 그 개념이 자기 논증에서 하는 일을 점검한다. 셋째, 논증의 약점이 “문장 표현”이 아니라 “warrant의 위치”에 있음을 배운다. 넷째, 다음 글에서도 “이 용어가 결론을 낳는가, 아니면 내가 숨긴 전제가 있는가”를 스스로 묻는 검산 습관을 얻는다.

이런 의미에서 개념 우회 코멘트는 학생을 더 난해한 학문어로 밀어 넣는 방법이 아니라, 학생이 자기 판단을 직접 책임지는 문장으로 돌아오게 하는 교육적 엘렌쿠스다.

6. 수정 원칙

개념 우회를 고칠 때에는 다음 순서를 따른다.

  1. 라벨을 낮춘다. 작위의무, 부작위의무, 시혜, 해악, 대상화 같은 말이 결론을 대신하지 못한다는 점을 확인한다.
  2. 실제 연결전제를 찾는다. “왜 이 라벨이 이 결론으로 이어지는가”를 한 문장으로 쓴다.
  3. 반례를 생각한다. 부작위의무도 강한 경우, 쾌락이 좋은 경우, 대상화가 아닌 사용의 경우를 떠올린다.
  4. 결론 강도를 조정한다. 현재 전제가 “정당하다”까지 증명하는지, 아니면 “그 자체로 부당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정도만 증명하는지 본다.
  5. 반론을 같은 층위에 맞춘다. 상대방은 라벨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고, 라벨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결론을 낳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좋은 논증문은 어려운 말을 많이 쓰는 글이 아니다. 좋은 논증문은 어려운 판단을 피하지 않는 글이다. 개념은 그 판단을 더 정확하게 만들기 위해 쓰는 도구이지, 판단을 대신해 주는 방패가 아니다.

참고문헌

  • Bartholomae, David. 1986. “Inventing the University.” Journal of Basic Writing 5(1): 4-23. https://doi.org/10.37514/JBW-J.1986.5.1.02
  • Benson, Hugh H. 2000. Socratic Wisdom: The Model of Knowledge in Plato’s Early Dialogue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https://doi.org/10.1093/oso/9780195129182.001.0001
  • Bereiter, Carl, and Marlene Scardamalia. 1987. The Psychology of Written Composition. Hillsdale, NJ: Lawrence Erlbaum Associates.
  • Bloome, David, Pamela Puro, and Erine Theodorou. 1989. “Procedural Display and Classroom Lessons.” Curriculum Inquiry 19(3): 265-291. https://doi.org/10.1080/03626784.1989.11075331
  • Bourdieu, Pierre. 1991. Language and Symbolic Power. Edited and introduced by John B. Thompson. Translated by Gino Raymond and Matthew Adamso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 Lea, Mary R., and Brian V. Street. 1998. “Student Writing in Higher Education: An Academic Literacies Approach.” Studies in Higher Education 23(2): 157-172. https://doi.org/10.1080/03075079812331380364
  • Meyer, Jan H. F., and Ray Land. 2005. “Threshold Concepts and Troublesome Knowledge (2): Epistemological Considerations and a Conceptual Framework for Teaching and Learning.” Higher Education 49(3): 373-388. https://doi.org/10.1007/s10734-004-6779-5
  • Perkins, David. 1999. “The Many Faces of Constructivism.” Educational Leadership 57(3): 6-11.
  • Toulmin, Stephen E. 1958/2003. The Uses of Argument. Updated 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https://doi.org/10.1017/CBO9780511840005
  • Vlastos, Gregory. 1983. “The Socratic Elenchus.” Oxford Studies in Ancient Philosophy 1: 27-58.
  • Vlastos, Gregory. 1994. Socratic Studies. Edited by Myles Burnyeat.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https://doi.org/10.1017/CBO9780511518515
  1. Stephen E. Toulmin, The Uses of Argument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8; updated edition, 2003). 

  2. David Bartholomae, “Inventing the University,” Journal of Basic Writing 5, no. 1 (1986): 4-23. 

  3. Jan H. F. Meyer and Ray Land, “Threshold Concepts and Troublesome Knowledge (2),” Higher Education 49, no. 3 (2005): 373-388. 

  4. David Bloome, Pamela Puro, and Erine Theodorou, “Procedural Display and Classroom Lessons,” Curriculum Inquiry 19, no. 3 (1989): 265-291. 

  5. Carl Bereiter and Marlene Scardamalia, The Psychology of Written Composition (Hillsdale, NJ: Lawrence Erlbaum Associates, 1987). 

  6. Pierre Bourdieu, Language and Symbolic Power, ed. John B. Thompson, trans. Gino Raymond and Matthew Adamso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91). 

  7. Gregory Vlastos, “The Socratic Elenchus,” Oxford Studies in Ancient Philosophy 1 (1983): 27-58; Gregory Vlastos, Socratic Studies, ed. Myles Burnyeat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8. Hugh H. Benson, Socratic Wisdom: The Model of Knowledge in Plato’s Early Dialogue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0).